[開發(개발)되는 農村(농촌)찾아 - 疏外(소외)된 社會參與(사회참여)의 動脈(동맥)] ⑭ 任實(임실) 산양협동조합 (上)
池(지신) 신부 農工並進(농공병진)에 착안
山羊乳(산양유)로「치스」加工(가공) 성공
염소가 전교회장을 선행해
농업만이 농촌본당·농민과의 접촉점
멀고 먼 전라도. 기차도 있고 특급도 있고 뻐스도 있고 직행도 있다. 근대화는 이름뿐인가? 濟州도 여행보다 더욱 힘들다 천신만고로 여수행 야행열차를 찾아 타고 임실역에 내린 것이 새벽 5시반, 성당까지는 아직 3km는 십릿길이 또 남았다. 전화를 걸었더니 순식간에 본당 지(池) 신부(친정이 베르기 「브랏셀」일명 디디에)님이 소방분대장처럼 싯뻘건 오토바이로 창조의 그날 그 첫새벽인양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을 울리며 달려왔다. 가톨릭시보 논설위원을 이 낡은 오토바이 꽁무니에 달고 달릴 작정이다.
아침식사는 4원짜리 찐빵 세개에 국산차 한잔커피 생각이 간절해 진다. 식사를 하는 동안 필자는 베르기의 그 호화로운 식탁을 몇번이고 연상했다. 그러나 여기는 한국이요, 농촌본당이다. 교회는 대중 밖에서 초연하게 앉아 대중을 교화하겠다던 생각을 지양한지 오래다.
교회는 대중 속에 들어가 대중들과 같이 생활하고 대중들과 같이 발전하여 같이 보다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벽안(碧眼)에 코만 우뚝 살아남은 초췌하기 비할데 없는 농촌본당 신부 의 한국적인 검소한 생활에 한없는 공감이 간다.
임실은 산이 많고 그 산에는 지하수가 풍부하기로 이름있는 고을이다. 금년 같은 대한(大旱)에도 임실의 산야에는 가뭄을 몰랐단다. 수많은 산들이 먹음직한 풀들로 온통 뒤덮여 있는 곳이 임실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임실 사람들은 산양을 길렀다. 구자유당정권때만 해도 산양을 장려하여 멀리 미국에서 우량종을 비행기로 실어다가 염소 치르기 장려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농업정책이 언제나 치르는 고배, 그것은 무계획이었다. 일관된 회칙도 없고 더구나 생산품의 처리에 이르러서는 더욱 고려가 없었다. 착한 농민들은 염소를 치고 양유를 부지런히 짰지만는 소비시장이 없었다. 도시는 멀고 운반의 방도는 더욱 없었다. 자연 이 사업은 사양을 면치 못했고 염소는 타도로 팔려가고 혹은 통채로 식탁에 오르고 말았다.
농산물은 가공을 해야 소득을 더욱 올릴 수 있다. 농공병진이라 하지 않는가? 여기에 착안한 분이 지 신부다. 산양유(山羊乳)로 「치스」를 만들자. 구라파에서는 염소 「치스」가 우유의 그것보다 한 시세 더 받지 않는가. 지 신부의 꿈은 컸다. 임실읍내에서 제일가는 큰 건물 백40평짜리 성당은 언제나 텅텅비어 있다. 농민들은 너무 가난하다. 정신문제에 눈뜨기에는 생활문제에 아직 너무 근심한다. 그들의 소득증대는 곧 이 텅텅빈 성당을 채우는 첫관문이 되리라. 농촌본당과 농민들의 접촉점은 농업이다. 염소가 교회와 농민들간에 다리를 놓아 주다니. 염소는 전교회장에 선행(先行)한다.
지 신부는 염소「치스」 만드는 연구를 시작했다. 구라파로 휴가를 떠나 1개월간의 피정신공을 하는데 그 장소로 불국 「브론뉴」지방 성「질다스」수도원을 택했다. 가난을 부자 밥먹듯이 하는 예수의 작은 형제들이 수도하는 곳이요, 여기에 수사들이 염소「치」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달간의 수업은 지 신부에게 일급기술자의 자신을 갖게 했다. 그러나 돌아와서 한국부엌에서 그나마 본당 수녀님들의 눈총을 맞아가며 부뚜막에서 만드는 기술연마는 훌륭하게 성공했던 것이다. 남은 문제는 염소를 먹일 친구들을 만드는 일과 조합을 만들고 공장을 만드는 일이다. (계속)
金達湖 記(本社論說委員·慶大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