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45년 간을 교회 발전을 위해 성직에 몸바쳐 오던 이기수(야고보ㆍ전 칠성동 주임) 이성만(이냐시오ㆍ전 반야월 주임) 두 노사제가 11월 11일 고령으로 정들었던 성당을 떠나 조용한 은퇴생활에 들어갔다.
이 두 노사제는 1926년 5월 28일 대구 유스띠노신학교를 졸업 그 이튿날인 29일 사제로 서품된 이래 근 반 세기 가까운 세월을 교회 발전을 위해 힘써 왔다.
밀양군 가인에서 출생하고 본당신부의 권유로 신학교를 지망했다는 이기수 신부는『별 큰 일 없이 오늘 이렇게 물러설 수 있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면서 담담한 표정으로 이삿짐을 꾸리고 있었다. 고령으로 큰 지역 사목을 감당할 수 없어 오래 전부터 은퇴를 결심했으나 은퇴 후에도 신자들과 같이 생활하고픈 집념으로 마땅한 자리를 구하지 못해 이같이 늦어졌다고 한다. 마침 왜관 베네딕또 수도원 오도 아빠스가 오는 8일 준공을 예정인 신축 동명공소(칠곡군)에 방 한 칸을 마련, 신자들과 함께 조용히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이번에 은퇴 소망은 이루어진 것이라고.
이 신부는『박력 있는 젊은 세대가 시대 조류에 맞는 사목을 잘 해나갈 것으로 믿기에 안심하고 물러설 수 있다』고 하면서『우리보다 늦게 들어온 개신교는 사회 적응에 훨씬 앞서 있다』고 지적, 교회의 적극적인 현실 참여를 후진들에게 당부했다.
한편 20일 반야월성당에서 대구 까르멜 수녀원 뒤 교구 소유의 조그마한 집으로 이사온 이성만 신부는『3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은퇴를 결심했으나 마땅한 장소를 구하지 못해 늦어졌다』고 하면서『이제 우리들의 뒤를 이을 젊은 신부들이 많아 마음 놓고 은퇴를 자원할 수 있었다』고 그간의 경위를 말하며 주름진 얼굴에 활짝 웃음을 띈다.
자신의 구령과 교회의 발전을 위해 성직에 첫발을 들여 놓았다는 이 신부는 45년 간 몸바쳐온 성직을 떠나는 지금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다고 말한다.
서품 후 첫 부임지인 목포 산정동 보좌로 있을 때 풍파를 헤치고 도서지방 전교에 나갔으나 잘 곳도 먹을 것도 없어 그냥 소리 내어 울어 버렸다는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성격의 이 신부는 후진들에게『어떠한 직책을 맡더라도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하고 순명의 계율을 잘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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