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안동교구 총대리 具仁德(62ㆍ佛人 셀레스뗑 꼬요스) 신부는 28일 그의 전 생애를 통해 한국과 한국인에 보여준 훌륭한 성직 수행과 인간의 지위 향상을 위해 바친 뛰어난 공로로 프랑스가 수여하는 최고의 영예인「레지옹ㆍ도뇌르」상을 받았다.
이날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있은 수여식에서 프레데릭 막스 대사는 프랑스 대통령을 대신하여 그의 가슴에 금빛도 찬란한 훈장을 달아 주며 한 인간으로서, 성직자로서 생애를 불우한 사람들과 같이하여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맡겨진 사명을 묵묵히 수행해온 노사제(老司祭)에게 최대의 경의와 존경을 표시했다.
구 신부가 한국에서 걸어온 길은 고난과 인내의 연속이라 하겠다.
1932년 빠리외방전교회 신학교를 졸업, 신부로 서품되자 한국 파견을 자원, 이듬해인 1933년 6월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의정부에서 2년 간 지내다 과로와 영양 부족으로 폐를 앓게 되어 7년이라는 긴 투병생활 끝에 건강을 되찾아 50년 4월 15일 그리던 한국에 다시 오게 되었다.
그러나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 신학부)에서 강의를 맡은 지 달포 만에 6ㆍ25동란을 맞아 괴뢰군이 서울을 점령한 7월 15일까지 학교를 지키다 끝내는 내무서원에 끌려가 53년「모스코바」에서 본국으로 송화되기까지 3년 간 적치(赤治) 아래서「죽음의 행진」으로 표현되는 기아와 병고와 학대의 날을 보냈다.
구 신부는 본국으로 돌아간 53년 첫 번째「레지옹ㆍ도뇌르」훈장을 받았으며 북한에서의 생활을 엮은「나의 북한 포로생활」이라는 저서로 권위 있는「아카데미ㆍ프랑세즈」를 탄 바 았다.
그는 북한에서 평양 만포진 고산 중강진 원산 만포진으로 죽음의 행진을 했다. 같이 납북된 주교, 신부들이 기아와 병으로 쓰러졌고 추위에 떨며 같이 껴안고 자던 동료들이 이튿날 아침에 그대로 얼어 죽었던 기막힌 고난길에서 살아났다. 이는 오직 성모의 보살핌이라고 말하는 구 신부는『어떤 때는 배가 고파 풀도 뜯어 먹고 뱀도 잡아 먹었습니다. 7년 폐병장이가 살아났다는 건 기적입니다. 나는 성모께 죽지 않고 다시 일어나게 해 주신다면「루르드」성모상 앞에 감사드릴 것을 약속했고 성모는 나의 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구 신부는 53년 4월 30일「빠리」로 돌아오니 이미 사망자로 취급, 장례까지 치뤘더라고 그때를 회상하며 웃기도 한다. 구 신부는 1955년 7월 30일 세 번째로 한국에 온 후 대전교구에서 천안본당을 사목하다 62년 안동대리구 창설과 함께 경북 일대 8개 군을 맡아 왔고 작년 안동교구 승격과 함께 총대리로 있다.
그는 『나는 성직자로서 직분을 다하는 것 이외에 다른 야심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형제들이 나를 아껴 주고 내가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천주의 부르심을 받아 나의 제2 조국이며 고향인 한국에 뼈를 묻기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습니다』고 말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