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도소 안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쓰러져 가는 영혼들이 안타까워 혼자 힘으로라도 그영혼들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18년 간 재소자(在所者) 5백여 명을 입교시킨 교도관이 있다.
화제의 인물 서울구치소 교도관 고중렬(베네딕또ㆍ48) 씨는 그가 해낸 엄청난 일을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얘기한다.
『버려지는 영혼들이 불쌍했습니다. 조금만 손을 쓰면 그 영혼을 구할 수 있을 텐데 교수대에서 사라지는 사형수를 볼 때마다 죄책감을 막을 길 없었습니다』
그가 교도소와 인연을 맺기는 18년 전 군산형무소 교도관이 되면서였다.
그 후 9년 전 서대문형무소로 불리운 서울구치소로 옮겨오면서「영혼 구하기」사업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먼저 그는 재소자를 그리스도의 품으로 이끌기 위해선 인간적으로 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이방 저방 찾아다니며 그들의 어려운 일을 귀담아 듣고 해결해 주는 데 힘을 기울였다.
대화가 트이면 그 특유의 조용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권면하고 읽기 쉬운 성서를 차입해 주는 등 실천으로 그들을 감화시켜 왔다.
그는 지금도 겉장에「나의 사랑하는 대자들」이라고 쓴 때가 묻은 수첩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18년 전 군산형무소에서 처음 사형수 박모 씨를「요셉」이라는 이름으로 영세시킨 후 그와 접촉을 가진 숱한 수인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수첩이다.
이름 위에 빨간 십자 표지가 되어 있는 사람은 그가 영세시킨, 즉 그의「대자」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내는 동안 그는 무려 5백여 명의 대부(代父)가 된 셈이다.
서울구치소 안에선 고중렬이라는 이름보다「대부」가 그의 이름이다.
대자 중 1백20여명은 사형순데 그들은 한결같이 웃으며 형장으로 향했다.
한때 경기도 송추에 나타나 양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무장공비 노某도 그의 대자인데 철저한 유물론자이던 그도 결국은 그 앞에 굴복한 것이다. 그는 교수대 위에서「하느님 만세」를 소리 높이 외치고 사라져 갔다.
이곳에는 매달 셋째 주일을「천주교 예식일」로 정하고 미사와 영세를 주고 있다. 지난 7월 구치소 3층 우중충한 강당에서 아현동 장홍선 신부 집전으로 영세식이 거행되었다.
남자 7명 여자 1명이 푸른 수의를 벗고 흰 옷으로 단장한 채 이제 막 깨끗한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한 수인은 치밀어오르는 참회와 기쁨을 이기지 못한 채 오열을 터뜨렸다. 모여 앉은 3백여 명의 재소자들의 가슴에도 똑같은 감정이 파도치듯 다시 태어난 동료를 위해 열심히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듯이 순간적인 잘못으로 높은 담에 둘러싸여 개오의 나날을 보내는 재소자들에 고 씨는 뿌리 깊은 신앙과 따사로운 형제애로 이들을 감싸 주고 타일러 온 것이다.
고 씨의 일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출감한 사람들의 신앙 지도, 가매장된 무연고 사형수의 시체를 거두어 교회 묘지에 안장시키고 추석 때면 부인과 함께 묘지를 찾아 돌아보기도 한다.
중매도 여러 쌍 해 주었다.
그는 자기가 이곳에 직을 가지게 된 것을「천주의 섭리」라고 말한다.
그늘에 버려진 영혼을 밝은 세계로 이끄는 희열 때문에 한 번도 이일을 후회해 본 일이 없다고 고 씨는 말하나 그에게도 어려움은 많다.
그 중 재소자들에게 나누어 줄 충분한 교회 출판물이 제일 아쉽다고 한다.
그가 근무하는「교무과」한쪽 벽에는 노랗게 색이 바랜 책들이 꽂혀 있지만 일견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 많은 출판물 중 이들에 돌아갈 몫이 이렇듯 적은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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