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6일은 고독(孤獨)한 사슴을 노래한 노천명(盧天命ㆍ베로니까) 시인의 16주기(週忌)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사슴에서>
초기의 작품 「사슴」으로 알려진 천명은 1935년 「시원」에 등장한 뒤 달도 없는 어둠속 고독의 성(城)안에서 독신으로 살다가 46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그가 청려(淸麗)한 고독의 사포(SAPHO)었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일찍이 가톨릭집안에서 태어난 가톨릭 작가였음은 별로 알려지지 못했다.
천명은 1912년 9월2일 황해도 장연군 비석포에서 부(父) 노계일(盧啓一ㆍ당시 장연성당 회장) 모(母) 김홍기(金鴻基ㆍ데레사)씨 사이의 2녀중 차녀로 태어났다.
그녀의 성격은 「자화상」에서와 같이 몹시 차보여서 좀체로 가까이 하기를 어려워한다. -조그마한 거리낌에도 밤잠을 못자고 괴로워하는 성미는 살이 머물지 못하게 학대를 했다.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 -무디지 못한 성격과는 타협하기가 어렵다. 대처럼 꺾어는 질망정구리모양 휘여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 -에서처럼 잘나타난 부분은 없다. 차갑고 이지적인 그녀의 성격은 옳고 그름이 분명하여 사회생활에 많은 지장을 초래했는지도 모른다.
고독에서 자라고 고독에 살고 고독에서 노래부르다 주님의 품안에 안긴 천명의 고독한 생활은 2가지로 분류된다. ①조실부모(早失父母)와 형제가 많지 않았다는 점과 인생의 반려자를 찾지 못한 점 즉 환경적 요인과 ②그의 성격적 결함 즉 생래적(生來的) 고독벽을 들수 있다. 그러나 두가지 중에 천명은 환경적 요인보다는 생래적 요인에 가까운 고독의 시인이었다. 그는 오히려 고독을 가까이했고 자연스럽게 고독을 그의 생리화된 현상으로 구축, 시(詩)의 세계를 형성했다.
체흠이 말한 『절대의 고독 그것이 그대의 운명이다』는 천명의 로(路)에 맞는 말일 것이다.
천명의 고독은 많은 시간과 생을 타인과 더불어 보내지 못하고 군중과 사회속에서 오히려 무서운 고독을 느꼈던 정신인의 고독이다.
원래 이름은 기선(基善)인데 1917년 홍역을 심히 앓아 죽는줄로 알았는데 살아났다 하여 천명으로 개명한 그녀는 그 이름도 좋아하지 않다가 51년 4월24일 베로니까란 임명으로 임교한 후부터는 영세명으로 불리우기를 바랐다.
그가 51년 영세하게된 동기는 사랑하던 조카 용자(龍子)가 죽은 후 부터다. 원래 가톨릭 가정에 태어났으나 언니 기용(基用) 여사는 일찍이 보래 영세하였고 천명은 예의로 조카 용자의 유언으로 영세할 것을 약속했다 한다.
『일천주주(一天主)를 떠나 내 마음대로 헤맨 내 지나온 생(生)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 내 가슴골짜구니에서 하염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늘 돌아가야할 고향모양 향수에 차있던 가톨릭으로 나는 돌아왔습니다』 그가 영세한날 일기장 안에서 나타난 주님의 딸이 되었던 날의 감회다.
물론 51년 그녀의 나이 39세에 영세했지만 그동안 그녀는 작품과 생활에서도 차갑고 냉철한 그의 표피 뒤에는 항상 따뜻한 인정이 흘러넘쳤다.
도화동에 데리고 있었던 가정부에 대한 그녀의 온정과 길거리 영세 상인들의 애처로운 모습에 발을 멈추고 안타까와 했다는 일화는 대표적일 것이다.
장연 고향의 추억을 안긴채 산나물 수필을 썼던 천명은 수려한 귀족이면서도 「겨울밤」에서 보여준 구수한 된장찌개가 끓고있는 화로가의 촌부인 듯한 서민적 양면성을 지닌 한국 고전의 청아한 여인상이다.
2ㆍ3 차례의 연애사건이 있었지만 그녀에게 가장 큰 생의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김광진(재북ㆍ당시 보성전문 경제학 교수)씨와의 연애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이목과 소문 때문에 열정을 태우지 못하고 정신적 사랑에 그친채 독신으로 일생을 마쳤다.
현재 생존해있는 언니 기용(基用) 여사의 딸 최용정(崔用貞 45 아네스)씨는 천명을 「하나의 참다운 여인 존경하는 여인」으로 말하고 싶다면서 생전에 차가운 그녀의 성격 때문에 가까이 지내지 못했음을 한스러 한다.
1930년 진명여고 보통학교와 1934년 이대 영문과를 졸업한후 사회출발을 여기자로 시작한 천명은 조선 중앙일보 조선일보 출판부 「여성」지 필집 매일신보사 서울신문사 기자와 부녀신문사 편집국 차장 등을 역임했다. 그동안 그는 1935년 「시원」2월 창간호에 「내 청춘의 배는」으로 문단에 데뷔, 38년 1월 처녀시집 「산호림」과 45년 「창변」 등을 출간했다.
첫시집 「산호림」에서 천명은 향토에서 소제를 얻어 소박하고 순정적인 전경으로 객관화시킨 건강한 향토적 서정시인이었음에 반해 「창변」에서는 주정적(主情的) 표현으로 기울고 현실과는 이질적인 고독의성이 깊어만 갔다.
1956년 「이화70년사」간행으로 건강이 악화된 天命은 죽음의 길목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아무도 동행해줄수 없는 이 길목에서야
나 온종일 성모 마리아를 찾는구나
항시 함께 계서 주는 이 있거늘 나 모르고 살아온 고독의 날들
아무도 나와 같이 해주지 않을때 말없이 옆에서 부축해 주는 이
인자하신 어머니 성모 마리아여.
<흰 오후에서>
이미 발표 유작「흰 오후」는 타계(他界)하기 한 달 전에 쓰여진 작품으로 죽음의 불안과 고독의 검은나락에서 인자하신 어머니 성모의 품에 귀의하는 환상이 깃들여 있다.
그녀의 묘소는 경기도 고양군 벽제.
위의 소개한 두 시집 외에 유시집(遺詩集) 「사슴과의 고독의 대화」 미간행 유고 「문장독본」 이 있다.
<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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