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6ㆍ25가 휘몰아간지도 21년 그러나 아직도 한가정에 뿌린 아픔의 상처는 가실줄을 모르고 망망대해에 난항만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교회를 위해 순교한 최 토마(양업) 신부의 직계손녀 최운수(마르따) 여사의 경우이다.
6ㆍ25가 일어나기 전 최 여사는 해방후부터 약현성당에서 종지기로 종사해온 부군 윤병운(요셉)씨와 아들 경균(토마) 내외와 2살된 손자 종환과 동정녀인 딸 도비까 등 6식구를 지닌 대대로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규수였다.
이 집안의 경제적인 기둥인 아들 경균씨는 용산우체국에 근무하면서 약현성당 청년회와 성가대원으로 맹활약했던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아내 이 마리아씨와는 6ㆍ25 당시 결혼한지 3년이 된 신혼부부로 2살된 장남 종환이와 부인은 임신중이었다.
손자의 재롱에 웃음을 꽃피운 평화로운 집안에 난데없는 6ㆍ25가 터지자 아들 경균은 임신중인 아내를 데리고 온 집안 식구들과 같이 강원도 처가집으로 피난을 했다. 9ㆍ28 수북후 또 다시 11월에 수원으로 피난을 갔다가 경균씨는 제일국민병으로 선발되어 가게되었다.
만삭이 된 아내의 눈물어린 모습과 늙으신 부모님은 뒤로 남기고 20여일 동안 춥고 배고파 허기진 몸을 간신히 이끌고 대구로 향하고 있었다.
사무생활만하던 경균씨에게 너무큰 고역이었던지 중간에서 설사병을 앓게되어 대구에 도착했을 때에는 도저히 고칠 가망이 없어 군에서 나오게 되었다. 거의 죽게 된 몸을 이끌면서 부산에 내려와 치료를 받았으나 난리때라 그대로 객사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맏손자도 홍역으로 아들 곁으로 떠나자 청상과부가 된 며누리는 유복자였던 손자 종복군을 안겨주고 집을 나가버렸다.
허물어진 집에다가 그토록 믿었던 아들의 죽음과 며누리의 가출, 남은 두 내외와 다리를 저는 동정녀 윤 도비까씨는 손자 종복군을 안고 어찌할바를 몰랐다.
최 마르따 여사는 어린손자의 엄마노릇과 생활비를 보조하느라고 동분서주하여 늙은 몸을 흑사하다가 70년 5월 28일 고생많은 더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또한 부군 윤 요셉씨는 80노인으로 5년 전에 종지기를 그만두고 겨울에는 은행과 밤을 까서 여름에는 생선을 쪼개어 비어홈에 보내어 생활비를 보조해왔다. 하루종일 노인네가 수구리고 앉아서 까도 겨우 1백원정도의 벌이가 될뿐이었다.
이제 이 집안의 벌이라고는 9세때부터 관절염을 앓게 된 후 불구가 되어 결혼을 포기했던 50살이 된 동정녀 도비까씨가 양재소에서 받는 8천원이다. 단지 그래도 한가닥의 희망이라고는 유복자였던 손자 종복군이 잘되는 일이다. 양친회의 장학금으로 겨우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좋은 자리에 취직을 하려면 대학을 가야한다는 집안식구의 의견에 의해 교통비도 안들이는 M대학 야간부 2학년에 재학중이다.
1년동안은 뻐스운수부에 종사하여 월9천원을 받아 학비에 보탰으나 그것도 제대로 되지않아 그만두고 지금은 일자리 구하기에 온시내를 전전하나 그에게는 구호의 손길이 닿지않는다.
진정이 집안의 어두운 그림자는 우리들의 조그마한 정성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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