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어린 꽃잎은 너무나도 어이없게 떨어졌다. 18일 오전 8시50분경 충남 영1~1688호 코로나택시(운전사=최덕인 여ㆍ21)가 대전시 갈마동 갈마국민학교 앞 갈마교 입구에서 앞서가는 버스를 추월하려고 핸들을 꺾는순간 어린이 교통반 제복에 제모를 쓴 백승진(요한ㆍ동교6년 1반ㆍ12세)군을 발견, 급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승진군의 어린 몸은 벌써 2~3m나 내동댕이 쳐지고 말았다. 대전유성간 국도로 교통이 극도로 복잡한 사고현장에는 이날 이들을 돌봐주는 경찰도 교사도 없었다. 성인(成人)들의 이러한 부주의와 무책임한 처사로 평소 사제직을 열망해오던 어린싹은 어처구니 없게 꺾이고 말았다.
일주일씩 교대로 해오던 교통정리 책임을 맡은지 3일째되는 이날 아침 승진군은『차들이 너무 달려서 교통정리를 하려니 겁이 난다』면서 몇번 머뭇거리더니『교통정리하는 광경을 엄마가 옆에서 지켜봐 달라』고 졸랐다.
승진군을 타일러 먼저 학교에 보내고 집안 청소를 끝낸뒤 어머니 이능주(제노비아ㆍ43) 여사가 현장에 나갔을 때는 이미 사고가 나서 백군은 가해차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진 직후였다.
심한 뇌진탕으로 실신한 승진군을 싣고 달리는 차를 동급생의 신고로 잡아 백군을 즉시 시내 유지문외과에 입원시켰으나 계속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이날 12시30분경부터 갑자기 맥박이 상승하기 시작하자 위험을 직감, 즉시 충남 도립병원에 옮겨 뇌수술을 받았으나 치료의 보람도 없이 오후 11시40분경 가족들이 안타까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요히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백군의 장례는 20일 오후 5시 갈마국민학교 교정에서 목동 본당주임 공 아우렐리아노 신부의 사도예절에 이어 학교장으로 엄수됐다.
가족들의 요청으로 가톨릭 식으로 거행된 이날 장례식에는 1천5백여명동의교 어린이들과 조중엽 충남도교육감, 이규섭 경찰국장 및 백군의 가족 친지 등 3천여 명의 조객들이 참석, 못다 피고 간 어린 넋의 명복을 빌었다.
특히 이날 같은반 김은주양이『승진아! 너는 우리학교의 자랑이며 우리들의 등불이었다』는 조사(吊詞)를 목메어 낭독하자 조객들은 슬픔을 가누지못해 온 장내는 울음바다를 이루고 말았다.
북받치는 슬픔을 참지못해 아들의 관을 잡고 통곡하며 딩구는 어머니 이 여사의 애처러운 모습에 참석자들은 고개를 외면해야만 했다.
죽은 승진군은 어렸을적부터 이웃에 있던 성당에서 신부 수녀들과 놀며 가톨릭을 눈여겨보고 가족들을 졸라 다섯살때인 64년 성탄때 어머니 이 여사와 형 원본(도미니꼬ㆍ17 대전공전 1년)군 및 누나 승민(리따ㆍ14 충남여중 2년)양과 함께 영세를 받고 가톨릭에 입교했다.
지능지수 141로 1학년때부터 수석을 빼앗겨본 일이 없는 승진군은 평소『나는 장차 신부가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해 왔다.
그러나 승진군의 이 소망이『채 움도트기 전에 껶이고 만 것은 실로 안타까운일』이라면서 공 신부는 못내 서운해한다.
바쁜 군무(軍務)로 아직 영세를 받지 못했으나 곧 가톨릭에 입교『죽은 승진이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아버지 백구현(예비역 대위ㆍ46ㆍ육군 통신학교 문관)씨는『사고예방을 위한 안전대책을 세우지도 않은채 위험지대에 어린이를 내세우는 처사가 다시는 있어서는 안되겠다』면서『이번 사고가 앞으로 사고예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우리 승진이의 죽음은 보람된 죽음이 아니겠는냐?』고 가족들을 달래고 있었다.
23일 오후 7시 목동성당에서는 승진군의 가족ㆍ친지 및 많은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 신부 집전으로 위령미사가 봉헌됐다.
이날 공 신부는 미사중 강론을 통해『죽은 승진군은 목숨을 바쳐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보여주었다』고 하면서 승진군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호소했다.
한편 대전 동남쪽 대덕군 산내면 삼계리 대전시내 성당묘지에 있는 승진군의 무덤에는 각계에서 보내온 조화가 쓸쓸히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사고후 책임 전가에만 급급한 성인(成人)들과는 달리 의롭게 살다간 승진군은 말없이 조용히 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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