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오직 불우한 이들을 위해 70년생을 봉사하다 간 남 루도비꼬 신부를 마지막 보내던 지난 20일 때마침 강풍과 함께 억수 같이 퍼붓는 빗속에서 그가 키워 온 예수성심시녀회 3백48명의 수녀들은 남 신부의 유업을 이어 받아『가난한 이들 안에 예수 성심의 나라가 임하도록』열심히 일할 것을 흐느끼며 맹서했다.
거인(巨人)의 죽음은 너무나 뜻밖에 다가왔다. 17일 새벽 5시15분 전 갈평 성모자애원 요양소 내 그의 침실에서 기상한 남 신부는 여느 때와 같이 수녀들의 묵상 지도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심장마비 증세가 발작, 급보를 듣고 이 체칠리아 수녀 박 안드레아 수녀가 달려갔을 때 등의자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답답하다!』란 단 한 마디를 남긴 채 5시30분 잠자듯 눈을 감았다.
이때 그의 깨끗이 정돈된 책상 위에는 지난 밤 늦도록 본국의 은인들에게 써 놓은 편지들이 놓여 있었다.
남 신부는 자신의 건강도 돌보지 않은 채 최후 순간까지 불우한 형제들을 걱정하며 그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외국 은인들의 협조를 호소했던 것이다.
1922년 12월 사제로 서품된 남 신부는 그 이듬해인 23년 6월 5일 부모들의 완강한 반대를 뿌리치고 선교사로서 한국 땅에 첫 발을 디뎠다.
낙산본당을 거쳐 35년 12월 8일 6명의 정녀들로 예수성심시녀회의 기틀을 마련했고 36년 성모자애원을 창설, 무의무탁한 노인들과 아이들을 돌봐 왔다.
53년 남 신부는 전 수녀원 자리였던 송정에 새로운 집을 마련, 수많은 전쟁 고아들을 받아들이는 한편 인근 가난한 어민들에게 식량과 어선을 마련해 주고 포항시 죽도동에 성냥공장을 세워 가난한 노동자들의 일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56년부터는 나환자들을 위해 다미엔 피부병원을 부설하고 베타니아원을 세워 70여명의 나환자들을 수용, 직접 관리해 왔다.
사회사업에 이바지한 공로로 그는 62년 8월 15일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고 69년 본국인 프랑스 정부로부터도 레지용도뇌르훈장을 받았다.
남 신부는 오직 가난하고 병든 불우한 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것이다.
미리 준비해 놓았던 유언자에서까지 남 신부는그의 모든 것을 수녀원에 기증한다고 명기(明記)하고 자신의 사후에도 평소 그가 돌봐오던 불우한 사람들을 계속 보살펴 줄 것을 당부했다.
17일 그의 유해는 갈평에서 운구되어 본원 강당에 마련된 빈소에 안치됐다. 불과 24일 전인 10월 24일 그의 금경축 축하식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던 남 신부의 뜻밖의 비보(悲報)에 접한 수많은 사람들은 연일 빈소를 찾아 그의 명복을 빌었다.
장례식이 거행된 20일 이른 아침부터 평소 남 신부가 돌봐 주던 성모자애원과 베타니아원 원생들이 줄을 이어 빈소를 찾아 어버이를 잃은 서러움에 숨을 죽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30분 남 신부의 유해는 신자들의 기도 속에 입관, 영정을 앞세우고 성당으로 운구되어 11시30분 전 주한 교황대사 로똘리 대주교, 서정길 대주교, 장병화 주교, 두봉 주교, 이갑수 주교, 이문희 보좌주교와 친지 신부들의 공동 집전으로 영결미사를 거행했다.
이날 영결식에서『다시 못 올 머나먼 길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어찌 홀로 가셨습니까? 엊그저께 그 영광이 힘에 겨워 가셨습니까? 아니오면 애오라지 그 한 뉘를 백발이 성성토록 붓대 잡기 힘들어서 팽개치고 가셨습니까?』라는 권 프랑스와 수녀의 목메인 조사(吊辭)에 온 성당 안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영결식에 이어 심하게 퍼붓는 빗속에 수녀원 뒷산으로 운상된 남 신부의 유해는 2시 정각 수많은 그의 아들 딸들의 흐느낌 속에 평소 소원대로 한국 땅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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