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사제생활 반세기, 그동안 세상도 변했지만 교회도 많이 달라졌다. 요리문답을 안 외워도 되고 기도문도 짧아졌고 신앙생활도 퍽 수월해졌다.『그러나 요즈음 신자들은 너무 형식적인 신앙에 흐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지난 9월 22일 사제서품 50주년 기념일을 맞은 정수길(요셉ㆍ77) 신부는 10월 3일에 금경축 잔치를 가졌다.
『마산교구 젊은 신부님들이 잘 해줘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정 신부는 어떤 때는 너무 과분할 정도라고.
『우리가 잘 해야 나중에 우리도 받지요』『그도 그렇군!』노사제를 위로하는 젊은 신부들의 마음씨가 매우 흐뭇한 표정이다. 지난 5월 은퇴, 지금은 마산시 회원1동 409번지에 살고 있는 정 신부는 일생을 바친 사제생활에 아무런 미련도 없다고 하면서 감회에 잠긴다.
1896년 9월 15일 경북 예천군 집오면 도계리에서 출생, 1911년 9월 8일 당시 용산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 대구 성유스띠노 신학교로 옮겨 1922년 9월 22일에 사제로 서품됐다.
지난날 반세기의 사제생활을 회상하면서 순천(전남)에서의 사목생활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했다.
정 신부가 순천에 부임하기는 1931년, 당시 순천에는 본당 구역 내에 신자 5명 공소까지 합해서 모두 21명으로 주위에 가까운 본당이래야 광주ㆍ전주ㆍ진주 등지뿐이었다.『주교님 명령을 받고 짐을 꾸려 임지에 가 보니 성당도 사제관도 아무 것도 없어 마치 무인고도에 홀로 버려진 기분이었다』고 정 신부는 당시를 회상했다.
『우선 회장 집을 샀지요, 64평 터에 방 3칸 5칸 집이었습니다. 이삿짐을 내려줄 사람이 없어 짐꾼을 사야 했습니다. 미사도구만 풀고 다른 짐은 처마 밑에 그냥 두었지요』
성당을 짓고 사제관을 지어 이 본당 저 본당 관할구역을 조정, 신자를 확보한 후에 신부를 파견하는 오늘날에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이야기다.
정 신부는 부임 다음날부터 할 일이 없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찾아갈 만한 집도 없었다. 첫 주일에 본당 신자 5명과 함께 포교사업의 수호자이신 예수 아기의 성녀 테레사께 기도했다. 1년 동안에 신자 1백 명만 달라고. 그러면 영구히 이 본당의 수호자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부터는 자전거를 타고 막연히 신작로를 왔다갔다 했다. 긴 수단을 입고서. 그러나『아무리 다녀도 발 붙일 곳이 없더라』고 정 신부는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게 시작된 전교가 만 1년후에는 신자가 98명이 되었다.『3년 반 동안 그곳에 있었는데 내가 떠나올 때는 7백 명의 신자로 늘었습니다』고 지금 생각해도 즐겁고 보람찬 일이었다는 듯이 노안에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다.
『요즈음 세상엔 좋아진 것도 많아요. 신부가 많아 좋고 성당이 많아 좋고 문답 안 외우는 것도 좋고 경문 짧아진 것도 좋지요』그러나 못마땅한 점도 많은 듯했다. 후배 신부들에 대해서『할 말은 많지만…소용 있겠나?』하면서도『로만 칼라』는 꼭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기력이 정정한 80 고개의 노사제는『건강 관리를 위해서는 노동이 꼭 필요하다』면서 요즈음도 틈만 있으면 꽃나무 채소 등 밭을 가꾼다.
신학교에 가면 천당 가기가 좀 더 쉬울 것 같아서 신부가 된 것이 어언 50년이 흘렀다면서 금경축 잔치도 자신은 많이 사양했지만 결국 주위 권유에 못 이긴 것이다.
지난 10월 3일 마산 주교좌성당서 동창인 구요셉(은퇴ㆍ서울대신학교 영신 지도) 정루까 (은퇴ㆍ소사) 신부와 함께 정 신부는 금경축 축하미사를 공동 집전하고 칵텔 파티도 가졌다.
『물 한 모금도 시중이 아쉽고 조그마한 일에도 슬하가 그리운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한 분, 우리가 아쉽게 해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잡숫고 싶은 것 많이 드시고 구경하시고 싶은 것 많이 보시고…』이날 잔치에서 마산교구의 후배 신부들은 할아버지 신부님 앞에서 큰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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