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난 1일 3ㆍ1운동 54주년을 맞아 독립투사 33인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갑성(李甲成ㆍ86ㆍ요셉)씨를 찾아 그 회고담을 들어본다.
『한일합 방이후 일인(日人)들은 한국민족을 총ㆍ칼만 가지면 쉽게 취(取)할수 있다고 생각했죠. 물론 약간의 이견은 있었습니다만-』하면서 말문을 연 李옹은 용맹스러웠던 과거 젊은시절을 회상한다.『그런데 기미년 3ㆍ1운동은 한국말뿐 아니라 글과 심지어 성씨(姓氏)까지 빼앗아다 죽어있는줄만 알았던 한국민족의 정신을 높이 선양한 날입니다』
대 도시뿐 아니라 한반도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졌던『대한독립 만세!』는 눌리고 찌들었던 반만년 역사를 지닌 한민족의 울분이었다. 『이때 일본경찰들도 1년 이전부터 비밀연락망이 조직돼 있었음을 알고는 아연실색, 한국민족을 다르게 보더군요』
그 이후 우리 투사들의 비참한 생활은 말할여지도 없지만 그 외에도 죽어갔습니다ㅜ
자못 울먹이기까지 하면서 李옹은 일생을 두고 유관순씨의 잊혀지지 않는 자랑스런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의거 직전 비밀문서를 전국에 보낼 때다. 나이들이 모두 17ㆍ8세의 남녀학생 2백명이 목숨을 내걸고 이 임무수행을 위해 나섰다.
그 중 여학생이 68명 특히 이 여학생들은 검문이 심한 북쪽을 택해 보냈다.
이때 몸수색이 심해 문서들을 맨스대에 감춰 마치 맨스를 하고있는양 분장하여 떠났다. 이들은 몇백리를 걸어서 두다리 안쪽에 상처를 받아 돌아올 때는 모두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돌아왔다. 그런데 유독 한 여학생은 더욱 심해 걷지 못하고 기어오다가 본부인 세브란스병원 이옹댁 문전에 겨우 다달았을때 왼쪽 팔목만을 내민채 실신, 사망했다. 그 여인이 내민 팔목에는 책임완수를 확인할수 있는 먹물자국이 고여 있었다.
『전 한국여성같이 참을성이 많고 책임감 강한 여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나라 여성들보다 우리 여성들이 좋습니다』라고 한국여성의 우수성을 찬양한다. 이것은 결코 헛된 말이 아니라 구국운동에 앞장섰던 애국투사가 겪었던 산 경험의 결과이다.
그는 독립운동을 통해『민족이 스스로 노력해야 개인의 성공도 이룩할수 있고 또한 민족의 독립도 성취될수 있었음』이 판명됐다면서 『겨우 독립은 됐으나 완전한 자주독립이 못된 우리 한국은 각자가 더욱 노력, 삼일정신을 밑바탕으로 일치해서 완전한 자주민이 돼야된다』고 국가의앞날을 우려하기도 한다.
86세의 고령에 비해 정정해 보이지만 10년8개월간의 옥고와 각가지 고문에 귀가 잘 들리지 않을 뿐아니라 시력도 좋지못해 피로가 자주 온다는 그는 바른 손과 왼쪽다리를 전혀 쓰지 못한다.
아직도 목덜미에 맞은 상처는 아물지 못한채 환절기만 되면 진물린단다.
곤색양복 붉은색 넥타이를 맨 멋쟁이 노신사는 대구에서 12살때 부루윈 목사의 지도로 기독교에 입교한후 부인 최마리(마리아ㆍ63) 여사의 권면으로 61년 故 조원환(曺元煥) 박사를 대부로 박귀훈 신부 주례 아래 세종로성당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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