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하는 아들』
7.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의 확신은 요르단 강에서의 세례(메시1, 11참조)때와 산위에서의 거룩한 변모(마르꼬9, 7참조)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의해 확인됐습니다. 두 경우 다 복음사가들은 아버지께서 예수를『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마태오3, 17:루까3, 22)이라 선포하신다고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 외친 악령들로부터도 비슷한 확인을 받았습니다. 『나자렛 예수님,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십니다』(마르코 1, 24)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왜 저를 간섭하십니까?』
(마르코5, 7)
살아계신 하느님 아들
8. 우리가 사도들과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고려해볼 때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 근처에서 있은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특별한 주목을 받을만합니다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오16, 16). 이 신앙고백은 예수님에 의해 특별히 장엄하게 확인됐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마태오16, 17).
그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마태오 복음에 바람을 잠잠하게 하고 베드로를 구해주면서 겐네사렛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를 보고 사도들은 『주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하며 스승을 경배한 것이 나옵니다(마태오14, 33)
참된 하느님의 아들
9. 따라서 예수가 행하고 가르친 것은 그가 메시아일 뿐 아니라 참된「하느님의 아들이기도 하다는 것을 사도들에게 확신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그 확신을 확인했습니다. 바로 예수의 몇 마디 발언이 자신에게 하느님 모독이라는 비난을 받게 했습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바와 같이 특별히 극적인 몇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를 죽이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 예수께서 안식일 법을 어기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하시며 자기를 하느님과 같다고 하셨기 때문이다』(요한5, 18).
의회에서 예수님이 재판을 받을 때 같은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대사제 가야파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살아계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니 분명히 대답하여라. 그대가 과연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예수는 아주 단순하게 이에 답했습니다 『그것은 너의 말이다』즉 『그렇다』(마태오26, 63~64참조). 다시 빌라도 앞에서의 재판에서, 비록 다른 혐의 즉 그가 자신을 왕이라 칭했다는 혐의였으나 유다인들은 기본적인 비난을 되풀이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대로 하면 그자는 제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죽어 마땅합니다』(요한19, 7).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10. 그래서 우리는 결국 예수가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진리 때문에 십자가위에서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공식적인 죄명으로 십자가에 새겨진 글은『유다인의 왕 예수』라 되어 있었지만 성 마태오는『지나가던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네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고 말합니다. 또『저 사람이 하느님을 믿고 또 제가 하느님의 아들입네 했으니 하느님이 원하시면 어디 살려 보시라지』(마태오27, 43).
이 진리는 골고타 사건의 중심입니다. 과거에 그것은 사도들의 확신, 선포와 증언의 대상이었고 이제는 그것이 조롱의 대상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조차도 로마의 백인대장은 예수의 고통을 지켜보고 그가 죽는 순간에 아버지께 건네는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신적 신분에 대한 놀라운 마지막 증언을 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마르코15, 39).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
11. 복음과 전체 신약의 기본진리에 대한 로마 백인대장의 말은 예수탄생을 마리아에게 알리는 천사의 말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루가1, 31~32). 마리아가『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천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루가1, 34~35).
『나는 있다』
12. 예수는 자기가 실재적이고 본성적인 의미로 하느님의 아들임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 불렀습니다』(요한5, 18). 똑같은 확신으로 그는 그의 적들과 고발자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있다)』(요한8, 58)
이 『나는 있다』안에는 아브라함 시대뿐 아니라 모든 시간과 창조된 모든 존재를 앞서는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성 요한은 복음서 끝에 말합니다『이 책을(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20, 31).
[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 - 나자렛 예수] 160.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하)[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 - 나자렛 예수] 160.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하)
발행일1989-07-02 [제1662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