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 조계종(曹溪宗) 스님 두 분이 가톨릭을 연구하기 위해 프랑스 베네딕또 수도원에 유학한다. 한국 불교 1천6백 년 사상 처음 가톨릭 수도원에 유학하게 된 두 스님은 현재 봉은사(성동구 삼성동 소재)와 성라암)(성북구 성북동)에서 시공 중인 서법경(34), 윤호진(32) 두 스님.
이들은 앞으로 3년 간「빠리」근교에 있는 베네딕또 수도회 (쏠렘제롱)「라삐에르기비르」수도원에 머무르면서 한국 승려로는 최초로 가톨릭수도생활을 체험하는 한편 가톨릭교회의 제도, 조직, 포교 방법, 교회 경영, 사제 양성, 신자 교육문제를 연구케 된다.
서법경, 윤호진 두 스님은 동국대학을 거쳐 작년 동 대학 불교대학원 불교학과를 같이 졸업한 석사 스님들.
두 스님은 대학원 동창인 여동찬 신부(44ㆍ빠리외방전교회 신부, 본명ㆍ로제르메리어) 주선으로 오는 4월 8일 떠나 3개월 간 불어를 공부한 후 회색 장삼의 승려 차림으로 그곳 수사신부 지도 아래 수도원 생활을 시작한다.
『대학원을 마치고 일본으로 가서 전공을 넓혀볼 생각이었는데 프랑스로 방향을 바꾸게 된 건 동창 呂 신부의 권유가 크게 작용했지요 그보다 3년 전 呂 신부를 만나게 된 것이 동기가 됐나 봅니다』
종비생으로 나란히 대학과 대학원을 거치는 6년 동안 한 기숙사 방에서 젊은 승려로서 불교 근대화에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을 키워 왔다는 두 스님은 呂 신부와의 대화를 통해 불교가 안고 있는 제도적 미숙을 비교 검토해게 되었고 비록 종교는 다를망정 이 면에서 연구와 실적이 앞서고 있는 가톨릭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수도원을 택하게 되었다고 유학의 동기를 말했다.
두 스님의 프랑스행을 주선한 呂 신부는 53년 빠리외방전교회 신학교를 마치고 그 해 신부로 서품, 56년 한국에 와 대구, 안동, 청송, 영주 등지에서 본당을 맡아 오다 안동에 있을 때 인근에 있는 대원사를『이웃사촌끼리 인사나 나눌 겸해서 찾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불교에 심취, 급기야 69년 동국대학 불교대학원 불교학과에 입학해서 71년「고려시대의 호국 법회에 대한 연구」로 수석 졸업한 불교학 석사 신부로 두 스님과는 같은 과 동기 동창이다.『사원 경영, 도제 양성, 신도 교육이 어떤 체계 아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즉흥성을 띠고 있는 데서 한국 불교의 개선점을 느껴 왔고 평소 타종교와의 대화는 상대의 연구 없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프랑스로 가기로 결정을 본 겁니다.
특히 기독교와 불교는 계율 면에서 같은 점이 많고 어떻게 보면 같은 궁극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번 유학을 통해 교회 운영의 실제적 문제와 아울러 높은 차원에서 양교회를 비교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처음(70년 초) 프랑스행을 거론하자 지도교수를 비롯 종단의 웃어른들이 행여 잘못되지 않을까 해서 만류도 했지만 젊은 스님들은 전적으로 찬성했고 이젠 웃어른들도 많이 배워 오라고 격려는 물론 불교의 다른 종단에서 큰 관심 속에 여비까지 보태 주고 있어 개인적인 유학이나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70년 초 대학원 2년에 진학하여 프랑스행을 결정하자 呂 신부는 그가 강사로 나가는「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불어를 익히도록 주선하는 한편 빠리외방전교회 신부를 통해 유학을 절충했으나 실패, 작년 봄 왜관 베네딕또 수도원을 통해 여섯 군데 수도원에 서신을 냈던 바 전부 받아들이겠다는 회신을 받았다.
呂 신부는 작년 여름 휴가로 귀국한 길에 직접 수도원을 답사한 끝에 규율이 엄격하면서 개방적인 베네딕또 수도회의「라삐에르기비르」수도원을 택했는데 그곳에는 1주 정도로 버마ㆍ캄보디아 스님들이 다녀간 일은 있어도 3년 간 승려를 받아들인 예는 없어 수도원 측은 수도생활에는 선배 격인 스님들 지도에 행여 모자람이 있을새라 이미 지도신부를 선정해 놓고 불교관계 서적을 탐독 중이라고 한다.
이번 유학을 위해 가톨릭 교리를 특별히 연구한 바는 없으나 평소 呂 신부와 대화를 통해 상식 정도로 알고 있다는 법경 스님은『생활의 차이보다 사고방식의 차이를 극복하는 일이 걱정』이라면서 그러나 가톨릭의 수도생활과 불교의 수도생활은 같은 점이 많아 큰 염려는 안 한다고.
呂 신부는 스님들이 묵상과 일을 중요히 여기는 수도원생활에서 배울 것이 많을 줄 안다면서 이 일을 계기로 신부님들도 비교 종교학적 견지에서 불교를 연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17일 출국 준비의 바쁜 틈을 내어 呂 신부와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은 마치 십년지기인 양 허물 없는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구 태생인 법경 스님과 경남 율주 태생인 호진 스님의 경상도 말씨와 콧소리 섞인 呂 신부의 경상도 액센트는 경상도 어느 지방에 온 느낌.
두 스님은 이번 유학에 수속과 필요한 경비까지 담당한 呂 신부에 감사를 표하며『중이 하느님 덕을 많이 봤다』고 웃자『서양 중이 불교를 연구케 된 부처님 덕분에 얻은 유명세(有名稅)를 치른 셈』이라고 유창한 우리말 농 섞인 대꾸를 해 한바탕 웃었다.
불어를 배우는 1년 반 동안 선생 呂 신부에게 제자라고 구박(?)도 많이 받았다는 호상 스님은『가능하면 소르본느대학 불교학과에 들어가 폭 넓은 활동을 벌여볼 계획』이라면서 다른 세계를 살아온 동과 서의 불교와 가톨릭의 대화를 넓히는 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도록 여러 스님의 도움을 청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