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 남지 않은 잎을 달고 찬 바람에 떨고 섰는 나목을 본다. 그의 윤기 나는 피부도 탐스럽던 열매도 푸르고 무성하던 잎들도 간곳없이 지나는 소슬바람에도 윙윙거리며 서 있다.
외롭달까. 처량하달까? 어쨌든 이 나무가 개선장군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나무는 봄에 싹을 틔우고 잎을 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말하자면 자기가 해야 할 모든 의무를 다하고「때」가 되어 조아리는 충직한 종의 자세라고나 할지?
이렇게 자연은 제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그만인 것이요 또 스스로 자기 일 아닌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제 할 일이 무엇인지도 잘 모를 수가 있으니 문제다. 이유는 인간이란 지성과 의지로 스스로를 제어해야 하고「때」와「장소」에 따라 제 위치를 스스로 정립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은 언제나 어디서나 같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혹자는 말한다.『정치는 정치가에게 종교인은 종교에만』하고 말이다. 옳은 말인 것 같다. 또 이렇게도 말한다. 사회와 유리된 종교는 존립할 수도 가치도 없다. 이리하여 사회 참여를 부르짖고 있다.
말은 쉽고 갖다붙이면 그럴 듯하기도 하다. 그러니 오늘을 사는 크리스찬이나 사제들은 더더욱 고달플 수밖에...수계나 하고 성사 집행이나 하면 된다는 식으로서의 자지 일이 있고 사회 속의 일원으로 전 공동체 (신앙의 공동체나 정치 공동체)의 건전한 발전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예언자로서의 제 할 일이 있으리라.
말하자면 자기가 처해 있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해야 할 일이 있을 거란 얘기다.
전 공동체나 아니면 상당한 부분이 위기에 처했다면 전 공동체가 힘을 모아 그 원인을 제거해야 마땅하리라. 모두에게는 고유한 자기 일이 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의 긴급한 요청을 외면할 수 있을까? 그것도 갖가지 핑계를 붙여가면서까지...말하자면 우린 언제까지나 고식적인 제 할 일만을 찾아「에리고」로 내려가는 순수하고 거룩한 (?) 제관이어야만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