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아파 못 견디는 환자가 있다. 정말 안타깝다. 활명수를 사다 주고 항생제도 먹여줬다. 이불도 덮어주고 머리도 짚어봤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고통을 나누고 애태우며 하느님께 도와 주십사고 기도도 바쳤다. 아니 정말 하느님에게 빌 수밖에 없었다. 하느님을「하느님 같이」믿기 때문이다.
절해고도에 배를 움켜잡고 뒹구는 아들아이가 한 사람 있다고 하자. 못 이기는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아버지가 또 있다고 하자. 약을 사주고 물을 먹여도 더 심해져가기만 하는 아들의 배를 쓰다듬으며 맹장염일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상식이 아버지에게 있었다고 하자. 맹장이 터지고 염증이 내장 전반에 번지면 며칠 안으로 생명이 앗겨진다는 사실을 눈 앞에 두고 아버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육지는 멀고 의사는 없다. 하늘과 땅 사이에 바다만 보일 뿐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 운명이 어딘가에서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니다. 간단한 수술을 못해 아들을 그대로 죽게 하는 것은 천 번 만 번 부당하다. 내 배를 갈라서라도 아들을 살려야 하는데 속수무책으로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수술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과 구하고 싶은 정성만으로 수술은 되지 않는다.
(전문의의 눈에는 대장염인지도 모른다.)
맹장염 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워서 나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는가를 다시 생각했다. 아들이 아플 때 아버지가 당하는 고통, 확실한 진단과 안전한 시술을 하지 못하는 의사의 고통, 이것이 사목자의 고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