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신부가 하루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신자이므로 신부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 삼복더위에도 반드시 로만칼라를 하고 다닌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종신부를 보고 천주교를 평하므로 항상 언행에 세심한 주의를 하며 혹시 모욕감을 느낄 때라도 절대로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건 곧 한 마리의 양을 놓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우리 주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어느 부대에서 훈련을 받을 때였다. 교육 장교의 계급은 나보다 위였으나 나이는 더 아래였기 때문에 더욱 괴롭게 느껴졌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그는 여러 종파의 성직자들 중에서 유독 나에게만 사사건건 정신적 육체적 괴로움을 주는 것이었다.
마침 사순절이라 보속하는 마음으로 잘 참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녀님이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위문을 오셨다. 식사 후 여러 장교들과 어울려 담소하는데 돌연 그 장교가 나를 보고 외치는 것이었다.『신부님도 여자 생각 납니까?』그러자 좌중이 모두 웃었으나 즉시 조용해지며 호기심에 찬 눈으로 의기양양하여 나와 수녀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거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그러노라고 하면 신부도 별 수 없구나 여길 것이고 아니라고 하자니 불구자가 아닌가? 여길 테고 아무 대답도 안 하자니 분위기가 그렇지 못하다.
나는 참으로 난처해졌다. 곁눈으로 슬쩍 보니 나보다 차라리 옆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계신 수녀님이 더욱 난처하신 모양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동정을 놓고 케샤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고 질문했을 때 이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는 속이 뒤틀리는 걸 꿀꺽 삼키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 아마 시집 못간 올드ㆍ미쓰 누님이라도 계셔서 걱정이 되시는가 보군요. 한 번 소개해 주시지요』나의 이 말에 모두들 통쾌하게 웃었다. 특히 수녀님과 레지오 단원들도 신이 나서 웃었다.
얼마 후 교육을 마치고 떠나는 날 저녁 그 장교가 나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했다.『신부님 용서하십시요. 저는 어려서 성당에 갔다가 신부님께 심히 꾸중을 듣고 냉담을 했는데 이번 기회에 천주교와 신부님을 알고 싶은 마음에 유독 신부님에게만 일부러 괴로움을 드려봤습니다만 용케 견디셨습니다. 만일 꾀를 부린다든지 특히 지난 번에 화를 내셨다면 저는 교회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부님 고백성사 보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요』나는 그에게 고백성사를 주고 격려를 하여 돌려 보내면서 신부의 말 한마디와 태도 하나가 한 마리의 양을 잃을 수도 있고, 찾을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깊이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