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아들 메시아
1, 앞서 본바와 같이 구약의 언어로 「그리스도」라는 명칭은「메시아」를 의미했습니다. 옛 계약의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은 나자렛의 예수 안에 성취된 메시아 약속의 실현을 고대하며 살았습니다. 따라서 맨 처음부터 예수는 그리스도, 「메시아」라 불렸으며 『그분을 맞아들인』(요한1, 17) 모든 이들에게 그러한 분으로서 받아들여졌습니다.
2, 옛 계약의 전통에 따르면 메시아는 왕이라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이 메시아 왕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명칭은 구약의 야훼 일신(一神)주의 범위 안에서 오직 유비적 의미만 가지거나 은유적 의미까지 가집니다.
거기서는 하느님에 의해서 『낳음을 받는』아들을 의미하지 않고 하느님에 의해
선택되어 특별한 사명이나 직무를 위탁받는 자를 의미합니다.
「너는 내 아들」
3, 이런 의미에서 백성 전체까지도 때로는 「아들」이라 불립니다. 예를 들면 모세에게 건네신 야훼의 말씀에서도 『그러면 너는 파라오에게 말하여라…「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내 아들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출애급기4, 22~23: 호세야11, 1참조, 예레미아31, 9)고 하십니다. 구약에서 왕이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린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신정체제(神政體制)에서 왕은 하느님의 특별한 대표자인 까닭입니다.
예를 들면 왕의 즉위와 관련하여 시편2에서 그것을 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시편2, 7). 시편88에도 나옵니다. 『그는(다윗은) 나를 불러 「당신은 나의 아버지…」라 하겠고 나는 그를 맏아들로 삼아 세상 임금 중에 가장 높은 임금으로 세우리라」』(시편88/89, 26~27). 후에 예언자나 단은 다윗의 후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친히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만일 그가 죄를 지으면 나는 그를 치리라…』(사무엘하7, 14).
그러나 구약에서「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의 유비적(類比的)이고 은유적인 의미는 불투명하게 남아있는 또 하나의 의미를 내포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시편2에서 하느님은 왕에게 말합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시편2, 7) 그리고 시편109/110에서는 『샛별이 돋기 전에 이슬처럼 내 너를 낳았노라』(3절)고 합니다.
본성상 하느님의 아들
4, 예수님의 행동방식과 자기표현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실재에 대한 깨우침을 암시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이 성서적ㆍ메시아적 배경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공관 복음서들이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묘사하지 않지만(메시아로도 아니고) 그럼에도 여러 다른 방법으로 그는 자기가 유비적이거나 은유적 의미로가 아니라 본성의 의미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이해시키려 합니다.
내 아버지
5, 참으로 그는 자기의 하느님 아들이라는 관계의 배타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결코 하느님에 대해서 『우리 아버지』라 하지 않고 『내 아버지』라고만 말하거나 『내 아버지, 너희의 아버지』라고 구별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 주셨습니다』(마태오11, 27)라고 그는 주저 없이 주장하십니다.
이 하느님의 아들 됨이라는 관계의 배타성은 예수가 아라매아말『아빠』를 사용하여 하느님을 아버지로 언급한 기도에서 특별히 나타납니다. 이 말은 아들과 자기 아버지와의 특별한 가까움을 표시하며 예수님의 입에 오를 때 그것은 아버지의 뜻에 그가 전적으로 승복한다는 표현입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마르꼬14, 36).
다른 때 예수는 예를 들어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루가6, 36)『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마르꼬11, 25)처럼『너희의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아버지와 자기 자신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 성격을 강조하는 반면 이 하느님의 아버지 됨은 예수가 당신 사도들과 추종자들에게 가르친 「주의 기도」에서 드러나듯이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기를 열망합니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6,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그리스도는 신약전체의 수렴점입니다. 복음서들, 특히 요한복음과 사도들의 글, 특히 성 바오로 서간들은 명백한 증언들을 제공합니다. 현재 우리는 몇 가지 특별히 의미 깊은 언급들에만 중점을 둘 것입니다. 그것들은 어떤 의미로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 발견의 길을 열어 이「아들 됨」의 올바른 이해에도 더 가깝게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 - 나자렛 예수] 159.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 - 상
발행일1989-06-04 [제1658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