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생활을 하다 보면 별 사람이 다 찾아온다. 본당 일을 제쳐놓고 보면 대부분 경제적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인데 간혹 엉뚱한 사람도 만나게 된다.
군종신부로서 시내 모본당에 기생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오후 늦게 혼자 책상머리에 앉아 있으려니까 예쁜 아가씨 하나가 찾아왔다. 앉으라고 몇 번 권해 보았으나 멈칫멈칫 서 있더니 유한 비타민 한 병을 꺼내 놓으며 샐쭉샐쭉 웃는다. 이상해서『이거 뭐요?』라고 물어보니 그 대답이 묘하게 나온다.『신부님 잡수시라고요 잡수시고 힘 나시거든 저 좀 봐 주시라구요』앗차! 이런 선물 받고서는 신부라는 입장이 난처하게 되리라. 힘든 도움을 청하려 와 보니까 북어 같이 바싹 마른 사람이 않아 있으니 자기가 먼저 도와서 건강하게 만들어 놓고 그 다음 도움을 받자는 논조인가 보다 하는 장난끼 섞인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나 이거 안 먹어도 힘 나니 가져 가시오』하고서는 떠밀어 내다시피 내쫓고 나서 혼자 웃어 보았다.『굴러온 떡을 차 버리다니… 그것도 호박 같은 여인이라면 모르되 길거리에서는 흔히 찾기 어려울 만치 반듯하게 생겼던데…』하는 아쉬운 마음도 인간적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심정이었지만『평생을 독수공방하기로 맹세한 신부가 이거 되겠습니까!』하는 은총의 서광도 그 다음 서서히 마음 속에 비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약간 나사가 넘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십여 년 사제생활하는 동안 이와 비슷한 고비를 여러 번 당했다. 그때마다 번번히 하느님의 은총은 유혹을 쳐 이기게 해주셨다. 군복을 입고 새벽열차를 내려 여관에서 날 새기를 기다리다 보면 으레 무엇이 와서 도움을(?) 청하는 노크를 했었다. 요즘은 청ㆍ장년 교우들이 성사를 잘 보지 않는다. 성사 청하러 오면『다 알고 있으니 마음 놓고 고백하시오 신부도 당하거든 신부 아닌 사람이야 오죽하겠오? 돈의 유혹 명예욕 육신의 유혹…누구에게나 인간조건이 다 같은데 하느님 은총에 굴복하는 것이 인간의 솔직한 태도가 아니겠오』라고 말해주고는 간단한 보속으로 끝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