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는 자신의 고통을 잊으면서까지 이웃을 괴롭힐 정도로 질투심이 강한 짐승이라고 하는 얘기가 있다. 더운 여름철엔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 서로 몸을 맞대고 잠을 자고 추운 겨울엔 서로 떨어져서 잔다는 얘기가 있다.
모 신부님 장례미사에 참여하는 도중에 염소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적도 있다. 마태오복음 25장에서 형제 중에 가장 가난한 이에게 밥 한 술과 옷 한 벌을 준 사람은 양이 되어 천국에 들 자격이 있고 가난한 이웃을 외면한 이기적인 사람은 그리스도를 외면했기 때문에 염소가 되어 천국의 상속권을 잃게 된다는 내용의 성경 말씀을 들었던 것이다. 나도 죽으면 신자들이 앞에 와서 이 사제가 가난한 이웃을 도와 죽었으면 행복한 양이 되었을 것이고 비천한 자를 도와주는 행동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죽었으면 불행한 염소가 되었을 것이란 성경을 읽어 줄 것이 아닌가.
사실은 그날 미사에서 충격을 받기 이전에 최후 심판의 성경 말씀을 여러 교우들에게 소개한 일이 있었다. 크리스찬들은 가난한 이웃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고 가난한 이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아무리 비천한 나를 이곳에 나게 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하지 않는가? 가난한 이웃과 동포들을 그리스도로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 80만 명의 천주교 신자 중에 한 사람만 있어도 이 나라엔 만 명의 애국하는 사람 즉 남의 물건과 나라의 것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 아닌가?그러면 사회악이 점점 사라지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희망의 날로 기다려지지 않겠는가? 양이 많아지면 염소는 차츰 줄어들지 않겠는가?『정의와 평화는 사랑의 실천에서만 이룩될 것이다』하고 외쳐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은 나 자신이 양이냐 염소냐 하는 문제가 가슴을 찌른다.
나 자신이 먼저 가난한 이웃에게서 그리스도를 찾기 위해서 물질적으로까지 도와주고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나 자신이 조국에 푸른 희망을 약속할 수 있는 만 명의 신자 중에 포함되어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가난한 사람과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양이 매달린 십자가를 겸허한 마음으로 바라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