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가 되면서 나의 호기심을 끌면서 기다려지는 것은 신자들의 고백을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열심히 고백소에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훈시도 빠뜨리지 않고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몇 주일이 지나면서 무덥고 어두컴컴한 고백소가 싫증이 날 때가 잦았다. 그래서 훈시도 없이 간단한 보속을 정해 주고 사죄경을 빨리 영해 주고 속히 고백소를 뛰어나오는 때도 있었다.
몇 주일 전부터 매주 같은 내용의 고백을 하는 분이 있었다. 왠지 그분의 고백 때만은 정성껏 한 마디씩 잊지 않았다. 이제는 매주 기다려졌다.
라디오의 연속극을 기다리는 아낙네들의 호기심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이번 주간에는 무사하였을까? 행여나 반복되는 자신의 실수에 실망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번 주간에는 오지 않았다. 걱정이 되었다. 아마도 아무 탈이 없었겠지 생각하면서도 불안하기만 하였다. 그분에게는 하루하루 불안한 생활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토록 간곡히 부탁을 했고 이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야속한 생각마저 즐었다. 누군지 알기만 하면 찾아가서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 다음 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주님의 도우심을 빌었다. 오늘도 초조와 기대 속에 많은 분들의 고백을 들었다. 아! 그분이 왔다. 잃어버린 양을 찾은 것이다. 반가왔다. 그리고 전에 없던 용기와 결단까지 보여 주었다.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주님의 인자하심에 감사를 드렸다. 용기를 잃지 말고 주님의 도우심을 같이 빌자고 약속도 했다. 미사가 끝나고 대부분의 신자들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깍듯이 인사를 하는 분이 있었다. 그동안의 지도에 고맙다는 것이다.
신부 된 지 두 달밖에 안 되는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첫 선물이었다. 잠시나마 요령을 피우려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은 모든 신부들의 공통된 심정이겠지만 고백소에서 사제된 보람을 찾고 눈물을 흘렸다는 어느 선배 신부님의 경험담이 이제 실감이 난다. 앞으로는 정성어린 한 마디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새로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