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제생활 10여년에 작년 처음 주임신부가 되었으니 이 자리가 하나의 출세라면 나는 형편 없는 낙제생이요 좋게 말해서 대기만성이다.
왕십리성당에 부임하면서 보좌신부 한 분을 모시게 되었다. 그분은 마음씨 좋은 미남에다 여자라면 누구나 미칠 지경의 멋진 목소리의 소유자이다.
그분이 좋아서 그런지 내가 훌륭해서(?) 그런지 우린 서로「형님」이라 부르며 재미있게 한 해를 함께 일했었다. 본당 재정, 우리의 생활비는 그분이 맡아서 돌봐주었는데 얼마 전에 그는 성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서독으로 떠났다. 그분은 육식을 좋아했지만 형편이 닿지 않아 아침마다 손수 마가린에 식은 밥을 김치 섞어서 볶아 자시곤 했는데 아침식사를 안 하는 나에게 권하곤 했다. 김치 냄새, 마가린 냄새는 좋으나 고춧가루가 나를 기죽게 한다.
나는 매운 것을 싫어한다. 그래도 그는 매일 아침,『형님! 맛이 있어요.잡숴 보시오』하며 밉지 않게 권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내 입이 네 입이야』하고 대답해서 웃곤 했다.
70년 전만 해도 머리를 깎으면 친일파다, 불효자식이다 하며 지탄을 받았는데 이제는 머리를 기른다고 야단들이다. 단발한 사람은 다 건전하고 장발족은 다 문제아일까.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더러운 공기와 음속에서 각박하고 짜증스럽게 살아가는 우리 형편에 제 입맛대로 자유스럽게 살았으면 한다.
나는 돈보다 시간이 아깝고 게을러서 이발을 아니한다. 이발하시오, 옷이 어떻습니다 하는 동네 단골 시어머니들이 없었으면…
우리 서울교구의 생활비는 4만 원이다. 이것으로 세 식구가 넉넉히 살아간다. 그러나 여유는 없고 또 여유가 필요없다.
그러나 신자들은 끔찍이 생각해 주고 또 그것이 사제의 생활 신념을 거스리는 것이 될 때도 많다.
나의 사생활은 가난하고 사심이 없을 때 자유롭고 홀가분하고 마음으로 부유해진다.
『신부도 사람이니까』라는 구실 부유한 신자들과 물질 생활 수준을 맞추도록 신자들은 애쓰며 염려한다. 그러나 이것은 내 지조를 꺾으면서 나를 위한다는 탈을 쓰는 것이고 나는 그 물질 때문에 감사하고 속이 비워져야 한다. 물질을 넘어선 부유함을 누리려는 사제의 입맛을 건드리지 말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