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우리의 지혜
6, 예수와 지혜를 동일시하는 것은 사도 바오로에 의해 특별한 통찰로 확인됩니다. 바오로는 말합니다.『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지혜이십니다. 그분 덕택으로 우리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고 ,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고, 해방을 받았습니다.』(고린도 전서 1.30). 예수님은 실로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천지창조 이전부터 미리 마련하여 두었던 지혜입니다』(고린도 전서 2, 6~7)『하느님의 지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영광의 주님과 동일시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인간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기까지 하느님의 자비로운 계획이 찬란하게 계시됩니다. 성서는 또한 하느님의 지혜가 아닌, 『이 세상의 지혜』, 자기 자신의 구원의 행위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인간태도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러한 사람의 눈에는 십자가가 어리석음과 나약함이지만 주여 주님이신 예수를 믿는 자는 사도와 더불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고린도전서1, 25)을 체험합니다.
지혜이신 예수에 대한 신앙
7, 그리스도는 참다운 『하느님의 지혜』로서 더욱 깊이 관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지혜서들의 언어와 명백히 관련되어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행상』, 만물에 앞서 나신 분으로 선포되며 그분을 통해 만물이 창조되었고 그분 안에 만물이 존속합니다.(골로사이1, 15~17참조).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분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시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이시며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히브리1, 3).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은 온갖 영적 지혜와 판단력으로 하느님의 뜻을 『충분히 깨닫도록 이끌어주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생활을 함으로써 언제나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온갖 좋은 일을 행하여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더욱 잘 알게』(골로사이1, 9~10)해줍니다
지혜의 사명
8, 복음기자 요한은 하느님과의 친밀함으로 묘사된 지혜에 대해 언급하면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에 대해 말하고 『그 말씀은 하느님이었다』(요한1, 1)고 고백합니다. 구약이 하느님의 말씀과 동등시하게 된 그 지혜는 이제 예수님과 동일시,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사신』(요한1, 14)말씀과 동일시됩니다. 지혜와 똑같이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도 당신의 말씀과 몸의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분이 『생명의 빵』(요한6, 48)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영의 생수를 주기고(요한 4, 10:7, 37~39), 그분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요한6, 68)을 갖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 가운데 예수님은『참으로 솔로몬보다 더 크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길과 진리와 생명을 보여주고 전해주는 지혜의 사명을 완전히 수행하실 뿐만 아니라 그분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요한14, 6) 그분은 하느님의 아버지됨의 신비에 있어서 최고의 하느님계시입니다.
온갖 지혜와 총명을
9, 아버지의 계신자인 예수님에 대한 이 신앙은 기쁜 소식의 가장 고상하고 위로되는 면입니다. 이것은사실 초기 크리스찬 공동체들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오는 증언입니다. 그 공동체 안에서 아버지께 드리는 예수님의 찬미의 노래가 계속 다시 울렸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미소한 이들에게 『이 모든 것을』 기꺼이 드러내셨기 때문에 아버지를 찬미했습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서 교회는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 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다』(마태오11, 27)는 이 신앙과 더불어 성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 영을 통해 아들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면서 당신의 계획, 당신의 지혜, 『온갖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주신』(에페소1, 8)당신 은총의 부요함을 우리에게 드러내십니다.
[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 - 나자렛 예수] 156. 예수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지혜 (하)
발행일1989-04-30 [제1653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