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4일 오후 8시 30분, 부활의 종소리가 은은히 울러펴지는 대구 내당동성당 앞에는 한 낯선 젊은이가 고개를 숙인 채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핼쓱한 얼굴, 허름한 옷차림에다 입술은 심한 타박상으로 부르터 있는 이 젊은이는 미사를 마친 남녀 신자들이 즐거운 부활절을 축하하며 삼삼오오 떼를 지어 몰려간 뒤에도 텅 빈 성당 앞에서 언제까지고 떠날 줄을 몰랐다.
이 젊은이가 바로「대구 껌둥이」란 별명으로 부산 전포동 뒷골목을 무대로 주먹을 휘두르며 이 일대 밤거리를 불안에 떨게 했던 정근수(가명33ㆍ알로이시오) 씨라는 것을 그 많은 신자들도 알 턱이 없었다.
이날 그는 오후 8시 대구교도소에서 출감하는 즉시 성당을 찾았으나 차마 성당 안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멀리서 하염없는 회한의 눈물만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대구 껌둥이」-그에게도 아름다웠던 과거는 있었다. 아쉬운 게 별로 없는 가정의 7남매의 장남으로 어린 꿈을 한껏 키워갔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재학 중 불행히도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헤어나기 힘든 악의 구렁으로 빠지고 말았다.
떼를 지어 밤거리를 헤메며 패싸움, 소매치기 등으로 전전하던 그는 폭행치사, 상해 등의 죄목으로 3번이나 교도소를 드나들어 』성(星)장군이란 명예로운(?) 관록도 붙었다. 몇 번이나 새 사람이 돼 보려고 노력도 했으나 전과자의 낙인이 찍힌 그에게 사회는 너무나도 냉정했다. 사회의 냉대는 그의 성격을 더욱 포악하게 만들어 그는 닥치는 대로 주먹을 휘둘렀고 소매치기로 힘 안 들여 앗은 돈으로 방탕한 생활을 계속했다.
지난 3월 말 그는 다시 소매치기 현장에서 덜미가 잡혀 수감됐다. 수감 중인 그에게 그날 소매치기 피해자가 찾아왔다. 그는 도망치려던 정 씨로부터 앞니 2개가 뿌러지는 중상을 입은 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정 씨가 앞으로 참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만 해 준다면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고소를 취하, 출감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말했다.
마음이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정 씨는 오히려 그를 비웃고 보냈다. 그러나 이 낯선 개신교 신자는 몇 번이고 그를 찾아와 새 사람이 돼 달라고 애원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가르침을 설득했다.
일찍 유아영세를 받은 정 씨는 무명의 이 개신교 신자로부터 그리스도의 참 사랑의 뜻을 차츰 깨우치기 시작, 드디어 그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사랑의 계명을 몸소 실천한 이 개신교 신자는 정 씨에게「출감」이란 부활 선물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튿날 정 씨는 대구대교구 까리따스(지도=김경환 신부)를 찾아 무슨 일이든 하겠다며 취업 알선을 부탁했다.
까리따스의 주선으로 정 씨는 지난 5월 1일부터 대아건설 대구 가톨릭문화관 신축 현장에서 일하게 됐다.
노동이라곤 처음 하는데다 교도소에서 극히 쇠약해진 몸으로 짐통을 메고 공사장을 오르내리는 일이 그에겐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어려움을 이겨냈다.
『처음은 정말 힘들더군요 그러나 참았죠. 만약 여기서 물러나면 또 그 악의 소굴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참았죠』
이제 정 씨는 그 옛날의 「부산 껌둥이」가아니다.『참 노동의 대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떳떳하고 마음 편한 일이란 것을 이제사 깨달았다』고 말하는 그의 몸과 마음은 지난 2개월 동안에 놀라우리 만치 건강해졌다. 정 씨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대아건설 공무부장 양입모(38ㆍ요한) 씨의 힘이 컸다.
양 부장은 정 씨의 작업 상황을 일일이 체크하면서 그에게 되도록 시간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이는 정 씨에게 전동료들과 접촉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틈틈이 적은 돈이지만 특별 보너스를 지급, 그의 사기를 돋구었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로 이제 정 씨는 현장 제일의 모범 일꾼으로 손꼽힐 정도로 성실해졌다고 귀띔하는 양 부장은 앞으로 정 씨를 건축 계통의 기능공으로 적극 육성해줄 뜻을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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