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애덕으로 도와주면 정부로부터 감사장을 받지만 가난한 사람이 「왜」많으냐고 그 원인을 물으면 남의 일에 상관 말고 성당에서 기도나 하라고 합니다』
인혁당 사건에 항의하다 75년 강제출국 된 뒤 4월5일 14년 만에 입국한 시노트 신부는 어느 나라이든 이러한 현상은 마찬가지라며 남미에서는 「왜」라는 질문 때문에 추방、 살해까지 당하는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애덕실천도 중요하지만 가난한 이의 생존권 문제빈익빈ㆍ부익부의 문제 역시 영혼을 살찌우는 문제와 별개가 아니다』라고 강조한 시노트 신부는 현실문제의 인식이 바로 「정의」의 출발이라고 단언했다.
따라서 성당에서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현실문제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 역시 신자들의 책임이며 의무라는 시노트 신부는、기도와 활동이 함께하는 삶을 강조했다.
강제출국 후 시노트 신부는 미국정부에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며 미국 전역 개신교ㆍ가톨릭교회를 순회、한국의 인권상황을 알렸다.
미국 메리놀회 본부 「정의평화회」에서 활동 중인 시노트 신부는 또 각 학교를 돌며 젊은이들에게 정의에 대한 강의를 하고 각 나라 메리놀 회원들에게 정의에 관한 교육과 함께 선교사 활동 및 의무등도 강의해 오고 있다.
『과거에는 애덕 실천만을 강조했지만、제2차 바티깐 공의회이후 현대사회 속에서 선교사의 생활도 변화했습니다』
시노트 신부는 남미 칠레에서 1년간 사목할 때에 『고문을 없애기 위해 기도하자』고 말한 한 외국 선교사가 추방당한적도 있다고 전했다.
『인천 영종도 본당에서 사목할 당시 한국 상황은 「말」을 못하던 시절이었으나 지금은 좋아진 것 같다』는 시노트 신부는 유신정권시절의 당시 상황에서 『혼자 사는 신부가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로 유신철폐ㆍ구속자 석방 등을 외쳤다고(인혁당 사건이 조작이란 생각은 지금도 불변이란다).
시노트 신부는 『기회가 닿으면 다시 선교사로 한국에 와 생활하고 싶다』며 『75년 떠날 때 환갑 때나 다시 오려나던 농담이 진담이 됐다』며 10년 이상 사목했던 영종도에서 환갑잔치를 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아 걱정했던 한국말도 생각보다 잘나온다고 덧붙였다.
<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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