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허원한지 29년이 된 필리핀 수녀로서 한국에는 72년도에 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수녀들을 무척 좋아했다. 피부가 희지 않은 나는 아마도 독일 수녀들의 검은 베일 속에 드러나는 흰 피부를 동경했던 것 같다. 수녀가 되고 싶어서 매일미사를 드렸는데 첫 영성체 때(8살) 나의 소망은 나에 대한 주님의 사랑과 내가 예수님을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었다.
여고시절에 나는 같은 학교를 다니던 20여명의 친척들과 함께 어울려 저녁마다 파티와 춤을 즐겼고 주말에는 함께 여행을 즐겼다. 17세 때 그들과 주말여행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했었지만 퇴원 후에도 계속 같은 삶을 즐겼다.
20세가 되면서 나는 삶의 목적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내 인생을 어떻게 계획할까? 내가 좋아하던 오빠와 결혼을 할까? 아니면 어릴 때의 꿈처럼 수녀가 될까?
대학교 3학년 때 어느 날 학교 후배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가정에서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녀는 외동딸이어서 아무 부족한 것 없이 무엇이나 누릴 수 있었지만, 그의 집에서 구속당하는 것이 마치 감옥에 갇힌 생활임을 상담하러 온 것이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하였고, 그때부터 나는 주님께 청소년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하는 수녀가 되는 길을 알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녀는 미국에 있는 착한목자수녀회의 수련자였고, 나에게 그 수녀회의 안내 책자를 보내주었는데 너무나 놀랍게도 책을 맨 앞장에 수녀가 울고 있는 여성을 품에 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확신할 수 있었지만, 아직 때가 이른감을 느끼고 그 책자를 잘 보관하였다.
23세가 되던 해에 나는 피정을 하면서 그 시간들에 도취되었고 그런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수녀가 되려는 마음을 굳히고 친구가 보냈던 책자를 찾아내어 입회안내를 묻는 편지를 미국으로 보냈다.
그러나 뜻밖에도 답장이 필리핀에서 온 것이었다. 그 수녀회는 필리핀에서 30년간 있었지만 나는 그 수녀회를 몰랐던 것이다(우리의 사도직은 공공연하게 드러내놓고 하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수녀님들은 나에게 언제든지 오라고 초대하였다.
나는 그곳을 방문하면서도 천천히 여유를 갖고 찾아갔지만 아마도 예수님은 급하셨나보다. 왜냐하면 지금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수녀님들은 내가 처음 방문한 그날 입회를 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후에 있는 약속도 취소한 채 바로 수녀원에 입회를 하였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신비롭기만 하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요한15장)
하느님은 나의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하얀 모습은 아니지만 마음속에 하얀 꿈이 이뤄지게 하셨고 기쁨과 평화의 나날을 주셨다.
또 내가 포기했었던 파티와 오락과 춤들을, 그 당시에는 내가 수동적으로 따라다니며 즐긴 것에 불과 했지만 지금은 나의 사랑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내가 직접오락과 파티를 준비하여 그들을 기쁘고 즐겁게 해주어야 하는 기회를 주셨다.
또한 옛날에 내가 포기해야만했던 여행들을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오히려 그 범위를 더욱 넓혀주셔서 여러 나라 (로마, 한국, 홍콩, 프랑스, 이스라엘, 미국 등)를 방문하도록 만들어주셨다.
요즈음 한국에서도 많은 외출을 해야만 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 우리 학생들의 직장을 찾아주는 일, 학비를 모아주는 일, 아픈 학생들과 병원에 가는 일, 옛날 학생들을 방문하기 위하여 여러 지방에 까지 출장가기도 한다.
착한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양들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끝까지 지켜주셨듯이 착한목자회 수녀인 내가 일하고 있는 마리아자매원의 학생들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감싸 안아 돌보아 주며, 10여 년간 내가 만났던 고통과 아픔 가운데서도 새롭게 일어서고 있는 소녀들과 여성들을 끊임없이 찾아보고 있다. 그중에는 춘천 「마리아의 집」에서 미혼모라는 어려운 상황을 겪어왔던 양들도 있고 끊임없는 사랑을 갈망하는 가족이 없는 양들도 있다.
하느님은 나의 엉뚱하기만 했던 꿈까지 이루어지게 하셨고, 내가 포기했던 모든 것까지 결국은 이루어주셨다.
『나를 따르려고 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배의 상을 받을 것이며, 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마태오19, 29)라고 하셨지만, 주님께서는 나에게 백배의 상이 아니라 만 배의 상을 주셨다.
또한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나는 우리의 양들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갈 것을 확신한다. 그 크신 사랑으로 내려 주시는 상을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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