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와 고사
몇 년 전 일이다. 나는 새로 영세한 한 신자로부터 희한한 이야기를 듣고 어안이 벙벙한 일이 있었다.
그분이 영세 받기 전날 밤 그의 노모께서는 마당가 돌담 밑에서 무엇인가 열심으로 하고 계시더라는 이야기였다. 이상히 여겨 가본즉 딸이 무슨 중대한 일을 한다기에 그 일이 잘 되기 위해 치성을 드리며 고사를 지낸다고 하시더라는 이야기였다. 영세를 잘 받기 위해 고사를 드린다.
참으로 전대미문의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식을 아끼고 그저 좋은 일만이 있기를 비는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고맙고 값진 것이다. 다만 이런 치성이 그 방향을 바로만 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된다.
■종부와 빈대떡
나는 사제생활 20여년에 잊혀지지 않는 색다른 일이 하나 있다. 갖 신부가 되어서의 일이다. 내가 모시던 본당 신부님은 매우 덕이 높으신 분이었다.
그때가 바로 6ㆍ25 피란시라 도처에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이들이 많았던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본당 신부님께서는 무의무탁하고 병든 노인 한 분을 어떤 한옥에 거처케 하며 돌보아 주셨다.
하루는 돌보던 아주머니가 노인이 위독하여 병자의 성사를 받게 해야 할 텐데 노인은 화만 잔뜩 내시고 도무지 응하지 않으신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내가 직접 찾아가 이 말 저 말 드려 권유하였으나 막무가내였다.
그냥 화만 버럭버럭 내시는 것이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어 왜 그러시느냐고 달래며 물었더니 빈대떡이 그렇게도 먹고 싶은데 아무도 사다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주머니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고 빈대떡을 마음껏 자시게 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 이튿날 다시 찾아갔을 때 노인은 대만족, 대환영이었다. 종부도 물론 잘 받으시고 선종하셨다. 빈대떡이 이처럼 힘이 있는 줄을 미처 몰랐었다. 그 후 나는 빈대떡을 볼 때마다 병자의 성사를 연상하는 묘한 습성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