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가 호랑이와 싸울 때 주인이 곁에 있으니 이기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주인이 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따라 그 황소의 생과 사가 달렸더라는 이야기이다.
지난해에 미국「캐나디켓트」주에 있는 성 로사 본당에서 7개월 동안을 신세졌다. 귀국한 후 그곳 수녀님들과 교우들한테서 편지를 받을 때마다『신부님이 우리와 함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이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처음 편지를 받을 때에는 그저 인사말이겠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수차례 같은 뜻으로 쓰인 글을 여러 사람들한테서 받으니 감개무량하다. 성 로사 본당에는 2천여 세대의 교우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동양인이 한 세대 흑인이 한 세대 있었을 뿐이고 그 외에는 전부가 서구 출신들이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신자들을 위하여 한 일이라고는 기껏 내 차례에 미사를 거행하고 한 달에 한 차례 강론하고 초대 받아가면 먹어 주고 함께 야유회에 참석하고 한 일 뿐이다. 언어가 자유스럽지 못하니 깊은 감정도 전달하지 못했다. 그곳 사람들은 우리나라보다 열곱이나 잘 살고 있지만 늙고 병들고 외로운 인생문제는 마찬가지다. 그저 마음 속으로 하느님의 축복이 그들 위에 계시기를 열심히 기원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귀국 지시를 받고 떠날 때 2백여 신자들이 송별 인사차 사제관을 방문하여 주었고, 그 중에는 비행장에까지 전송을 나와 눈물을 닦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 모습을 상기하면 새로운 감격으로 가슴이 맺힌다. 신부라는 존재가 무엇이기에 함께 있어만 주면 기뻐하는 심정이 되는 것인지 신비스럽다. 한 동양인 신부가 함께 있었다는 것이 그렇게 뜻이 있는 일일까? 20여년의 신부 생활을 하는 동안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 파란 곡절도 많았지만 그 속에는 인정이라는 표현 불가능한 신비가 스며 있었음을 느낀다.
어느 본당에서 전근 갈 때의 일이었다. 앞에서 가로막고 뒤에서 매달리고 떠나려는 자동차를 붙들고『신부님 우리하고 함께 삽시더』하며 목메인 소리로 울부짖는 통곡 속에서 이별해야 했다. 따지고 보면 함께 지내는 동안 교우들을 도와 준 것보다는 신세진 일이 더 많고 잘못한 것이 잘 한 일보다 더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