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39년 전 새 신부가 되어 문화의 불모지인 남쪽 나라 섬마을 개발교회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착한 목자로 널리 존경과 신뢰의 각광을 받아오던 선배신부님이 이웃 성당에 계셨다. 가까이 모셔 보니 복음적 아버지로서의 일상생활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리스도에게로 수람해 올 수 있는 자석적 힘을 가진 정말 훌륭한 분이었다. 기도와 성무생활에 뿐만 아니라 사목적 모든 일에 아낌없이 열심했다. 부지런히 배우고 연구한 대내외 관계사의 원리를 교회 정신에 정확히 영합시켜 처리하는 교회 행정에도 현명했다. 일동 일정에 신중하며 신앙적 의지가 강인해서 여하한 난경에도 굽히지 않고 끝내 사랑ㆍ겸손ㆍ인내ㆍ희생ㆍ봉사를 통한 사목적 돌파구를 모색하면서 계획한 일을 성취해 내는 의욕은 선망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나는 그분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교훈을 듣고 따르기를 기뻐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의 영혼을 복음적으로 계발하는 목자들의 생활은 ①항상 분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신이 간혹 지치는 시간이 있을지라도 마음 한복판에는 기쁨과 의욕이 더욱 팽창해 온다는 것을 신비하게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②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오락인 장기와 바둑을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오락에서의 마취가 사목생활에의 보람된 의욕을 잠식하기 쉽다는 때문이다.
③자기의 사목생활을 배우되 섬나라 험한 길에서 병든 두 다리만은 본받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 섬나라에서 16년 동안 사목한 그분의 훈도를 따라 나도 9년 동안 태산준령으로 구성된 섬들 바닷길을 많이도 걸어다녔다. 그러나 워낙 건강했던 젊은 시절이라 더욱 건강해져서 다행했다.
나의 사제생활의 초보를 이끌어 준 상기 교훈은 잊을 수 없어 여태 사목생활의 좌우명으로 삼고 실천하려고 애써 왔다.
그런데 이제 나도 노경에 접어든 생활 중이라 장기와 바둑을 배워 파적하고 싶은 아쉬움을 느껴 본다. 하지만 지금 전북 익산군 내 인적이 드문 한촌에서 성녀 소화 데레사식 전교에 열중하시면서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그 노사제의 모습을 사모하면 장기와 바둑이 저절로 외면해진다. 남의 마음을 감동시킨 사목생활의 내실(內實)이 이처럼 오랫동안 무서운 힘의 영향을 주는 것일까! 그 선배신부님은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