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안 되는 사제생활에서 2년 반의 본당 사목의 경험을 제외하고는 수도원 안에서 묻혀 살다가 4년 전부터 여러 동료들과 함께 수녀 교육에 임하고 있다. 사제의 보람은 본당 사목에서 느껴야 한다고들 하지만 수도자라서 그런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직접사목이나 간접사목이나 같은 정도로 중요한 것 같다. 그런 것보다는사제생활 20년에 접어든 지금에 와서 차츰 다가오는 유혹이 두렵다. 이자 인생의 유혹 얄팍한 경험 쥐꼬리 만한 지식 겨자씨만도 못한 신앙심을 자본으로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살아가고 싶은 무기력이 닥쳐 온다. 일정한 돈은 굴려야 늘어나듯 적은 자본이나마 열심히 굴려서 증자를 꾀해야겠는데 그만치만 있으면 살아가겠지 하고 게을러진다. 사제에게 가장 비참한 상태인 줄 알면서도 투기를 두려워하게 된다.
가끔 학생들이나 신자들이 찾아와서 지도를 청하거나 의견을 물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흔히 서로 비슷한 사정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똑같은 의견이나 해답을 제시하고는 놀란다. 모두가 다 다른 여건 안에서 살고 있을 그들에게 사정이 비슷하다고 해서 똑같은 의견이나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 짓을 되풀이하고 있다. 저 사람은 그런 사람 이 사람은 이런 사람 그 일은 그렇게 된 일 하고 언제나 미리 정해진 판단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자기 자본에서 동전 한 푼도 축내기를 싫어하는 부자와 같다. 이것은 매일 새로와지라는 복음의 요구와는 반대의 길인데도 마음대로 안 된다. 하느님께서 언제까지 나의 말을 놀려 주실는지 모르지만 투자하고 남의 것도 빌려다가 부지런히 굴려서 자본을 늘려야겠다. 천재나 영웅이기는 태어날 때부터 거부 당한 것이지만 이자로 살아가는 인생만은 되지 말아야지. 키에르케고르의 말대로 되어 가는 신자 사제이고 싶다. 이것이 미미하나마 남을 위한 사제가 되는 길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