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공소 때의 일이다.
햇병아리 신부때를 벗지 못한 채 금사리와 홍산 양 본당 신부를 겸임하고 있었다. 원래 건강치 못한 체질인데다가 독감까지 걸려 38도의 열과 식중독으로 어제 점심 때부터 굶고 오늘 가야 할 공소마저 연기할까 망설이면서 10시가 다 되도록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을 때다.
며칠 전에 판공을 끝낸 옥산이라는 공소에서 병자의 성사를 청해 왔다.
오늘 돌봐 주어야 할 공소마저 가지 못할 만큼 아픈 처지이니 일단 거절했지만 30년간 성사를 받지 못한 성체를 모시고 나섰다. 버스를 타고 다시 2㎞나 되는 들판을 걸어가는데 심한 오한과 통증으로 허리가 잘라지는 것 같다. 환자는 정신이 또렷했지만 가래로 목이 막혀 말을 못 하기에 통회를 시키고 고해와 병자의 성사를 주었다.
그 환자가 물의 힘을 받아 가까스로 마지막 도자성체를 받아 모신 순간 그는 임종하시는 것이 아닌가!
금시 내 아픔은 어디로 가고 사제로서의 보람과 감격이 솟구쳐 올랐다.
알고 보니 이토록 복되게 선종한 김 프란치스꼬 씨는 딸이 외교인과 혼인한 관계로 조당 때문에 성사를 보지 못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선종의 은총을 받기 위해 로사리오 기도를 열심히 바친 보람이 있었다. 병자성사를 청한 또 한 번의 환자가 있어 가 보니『제가 종부를 청했죠』하면서 밖에서 돌아다니다가 들어오기에 어이가 없고 딴 때 같았으면 신경질이라도 났겠지만 고해와 성체성사를 베풀어 드렸다. 그 길로 다음 공소에 갔으나 새벽 3시가 넘도록 고열에 시달리다가 다음날 오전에야 무리하면서 공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일주일 동안 꼼작 못하고 앓아 누웠다.
그때 내게 용기를 준 것은『오빠 신부님, 저는 축하보다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종부나 고해성사를 미루거나 거절하지 마세요. 만일 신부님의 부모님께서 청할 때 거절하시겠어요…』하면서 새 신부인 나에게 보낸 이 베닝나 수녀의 축하 편지였다. 그 후 이 편지와 김 프란치스꼬 씨의 선종은 10여년 간 사목생활 특히 성사 집행에 큰 힘이 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