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평신도사도직 협의회(회장=박정훈、지도=송광섭신부)가 주관하는 제6회 가톨릭대상 수상자 임길순、오언남、정팔기씨를 만났다. 가톨릭대상「사랑」부문의 수상자로 선정된 이들은 모두 고희가 넘어선 신앙과 삶의 원로들로써 평생 각자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봉사를 실천한 공로로 이 상을 수상하게 됐다. 다음은 이들 세 수상자가 엮어낸 아름답고 숭고한 삶의 이야기들이다.
임길순씨
『천주님이 주신 은혜를갚는 일이었을 뿐인데 이런 큰상까지 받게 된다니 부끄럽습니다』
39년간 가난하고 배고픈 이웃에게 빵을 나눠주고 가진바를 아낌없이 내주면서 사랑을 실천해온 임길순옹(80ㆍ암브로시오). 그 공로로 가톨릭대상을 수상하게 된 임옹은 아무도 모르게 죽는 날까지 계속하리라 마음먹은 일들이 온통 세상에 알려지고 말았다며 낭패함을 감추지 못한다.
임길순옹의 이웃에 대한 배려와 나눔은「여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자신과 가족이 춥고 배고프던 시절부터 시작됐다는데 더욱 의미가 있다.
1ㆍ4후퇴때 10식구가함께 남하해 거제도ㆍ진해를 거쳐 무일푼으로 대전에 발을 딛은 임옹은 대전역전에서 찐빵장사를 하던 그때 이미 가난한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들과 빵을 나누기 시작했다.
매일저녁 팔고남은 빵을 모아 역주변의 걸인과 생계가 곤란한 집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손수 빵봉지를 전하기 어언39년. 임옹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지주로 그 어려웠던 시절을 넘기고 이제는 대전 제일의 제과점「성심당」의 주인이 되었다.
『제가 가진것 모두는 천주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은혜를 갚기위해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매일아침「오늘 하루 무엇으로 당신은혜 갚으오리까」를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임옹은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이웃돕기에 나섰고 진잠성당과 구직공소 건립에도 큰몫을 했다.
금년2월엔 10여 년간 사재를 털어 세웠던 충북보은군소재 피정지인「성심의집」(대지 5천평규모)을 프란치스꼬수도회 양로원 건립에 선뜻 기증하기도.
임옹은 부인 한순덕씨(71ㆍ마르가리따)와의 사이에 7남매를 두고 있는데 임옹의 장남이 아직 전세집에 살고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주위사람들에게 이번 결단은 더욱 놀라움을 주고 있다.
불우한 이웃이 있는 한 자신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는 임옹은「이웃을 생각하는 삶」으로 남은 생(生)을 채우고싶다고 밝혔다.
<沃>
오언남씨
『나머지 여생을 더 훌륭히 살라는 경고장으로 알겠습니다』
긴세월을 한결같이 희생과 봉사의 활동으로 일관해온 오언남(75ㆍ아우렐리아ㆍ세종로본당)할머니는 수상소감을 이같이 밝히면서 『다른 자매들과 같이 일을 해왔는데 나 혼자 받는다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할머니는 1942년에 영세입교한 후 47년간의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어려운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병든 사람에게는 의사인 남편의 도움을 얻어 치료해주는 선행을 해왔다.
특히 오할머니는 서울세종로본당 초창기 때부터 지역선교에 일익을 담당、죽어가는 환자3백50여명에게 임종대세를 주었으며 수많은 사람을 신앙의 진리로 인도해 대녀만도 3백40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같이 전교활동에 열성을 보여온 오할머니는『지금의 신자들은 예전과 같이 전교에 그렇게 큰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아쉬워하면서『하느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며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느님의 엄청난 은총』임을 강조했다.
또한 오할머니는『장녀가 홍역으로 인한 심한 중병을 앓고 난 이후 하느님을 알게 됐다』고 입교동기를 밝히면서『예나 지금이나 임종을 앞둔 사람과 상가집을 대상으로 한 전교활동이 가장 크게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6ㆍ25동란 및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속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오할머니는『교회가 점점 부유해지고 있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며『그리스도의 사랑은 외형적인 성장에서 보다 주위의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는 삶속에서 실천해야할 것』이라고 현 교회모습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서울 도림동에서 출생하여 지금까지 서울에서만 살아온 오언남할머니는 의사인 부군 김남호(81세)옹과 결혼、3남4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3남을 모두 의사로、또한 딸들도 모두 대학교육을 시킬만큼 가정생활에도 충실해온 오할머니는『자신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신자는 아니지만 검박한 성격인 부군의 적극적인 성원 때문이었다』며 가정의 회합 속에서의 신앙실천을 강조했다. <楠>
정팔기씨
부평의 조그만 전세방에서 살면서 불우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정팔기(73세ㆍ안나)할머니의 나날은 언제나 바쁘다.
일주일에 한번씩 영등포교도소、수원교도소、의정부교도소、흥성교도소 등을 찾아 청소년재소자를 만나는 정팔기 할머니를 재소자들은「엄마」라고 서슴없이 부른다.
78년 천주교에 입교한 후 10년간 청소년재소자를 방문해온 정팔기 할머니는 사랑과 기도로 5백여 명을 영세시켰으며 부모가 없는 외로운 청소년재소자들의 엄마역할도 수행해오고 있다.
『처음 인천교도소에서 그 애들을 보았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세상에서 죄를 지었지만 그게 어떻게 그 애들의 죄겠어요. 그애들의 선량한 눈빛이 자꾸 보고 싶어 자주 찾았어요』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사랑이 그리운 재소자청소년들에게 주는 정팔기 할머니의 마음은 먹을 것ㆍ내의ㆍ마실 것으로 전해지곤 했다.
집을 팔고 전세방으로 옮겨、남은 돈으로 이들의 뒷바라지를 해온 정할머니는 기름장사 등을 통해 모자라는 자금을 마련했다.
또한 부평 십정동 나환자촌을 방문하여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기도하며 상을 당할 때 일관을 도와주고 있다.
『문드러지고 썩은 나환자의 시신을 입관하면서 그들의 영혼을 위해 더 많이 기도를 하게 된다』는 정팔기 할머니는 세상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과 늘함께 해왔다.
현재 친자식처럼 돌보는 출소한 3명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정팔기 할머니의 집에는 건강을 염려하고 보고 싶다는 사연의 편지가 매일 끝없이 도착된다.
10년 동안 청소년재소자들에게 교리를 들려주며 함께 기도하고 생활하는 동안 다시교도소에 들어온 사람은 단 한 명뿐. 나머지는 모두 건강한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만난 그 애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잘 생활하도록 손ㆍ발이 되어주는 것을 나의 의무로 생각한다』는 정팔기 할머니는 가톨릭대상의 수상에 대해『나는 주님의 도구일 뿐』이라며 겸손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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