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생활 벌써 25년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해외에서 신학교에서 보낸 세월을 빼고 나면 목자생활이라고 해야 겨우 7년밖에 안 된다. 하기야 신학교의 교편생활도 사목생활의 일환이기는 하겠지만 그때만 해도 어쩐지 그런 것과는 동떨어진 생활 같았다. 사실 본당 경험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교수들이 늘 들어야 했고 그래서 주일이면 부족한 경험을 채워 보려고 부지런히 본당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학문생활에 전념해야 할 교수가 본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일삼고 있으니 그것이 외도가 아니고 무엇이냐는 비난도 들어야 했다. 결국 신학이냐 아니면 사목, 양자택일만이 남은 길이라고 생각되었다. 본당에 나온 후로도 신학교의 강의에 계속하기로 했다. 재정적으로 약간 여유가 있는 생활인지라 아무도 그것을 아르바이트로 간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였다. 그런데 종부나 장례미사 같은 의외의 본당 일들이 공교롭게 신학교 강의 시간과 겹치는 경우가 생기곤 하여 두 가지 일에 충실해 보겠다던 애당초의 생각이 어리석었을 뿐더러 결과적으로 외도가 되어 버렸다는 죄의식까지 느끼게 했다. 신학교의 강의를 그만둔 이래 그때부터는 아무런 잡념 없이 사목에 종사할 수 있으리라고 기뻐하였으나 결국 그것도 오산이었다. 물론 양들이 원하는 대로 목자가 언제 어디서나 전적으로 봉사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양들에게 필요불가결이라고 판단되는 봉사 만큼은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연구생활에 대한 나의 미련이랄까. 그러한 것이 최소한 봉사에 필요한 시간마저 할애하는 데 인색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 23세 교황은 사목에 봉사하지 않는 직업적 신학자들이 교회에 끼친 많은 불행을 개탄하면서 자기는 그러한 신학자가 아니고 일개 목자임을 자랑으로 여겼다. 맡은 양들의 수를 알고 그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자기의 음성을 익혀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목자의 본 사명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실현을 주저하고 있다면 참된 목자가 가서는 안 될 직업적인 관료적인 외도를 걷고 있는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