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이란 바로 미사성제를 뜻하는 것으로, 이 말은 최상의 은혜를 주심에 감사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미사 또는 성찬이라 하면 그 안에 이미 감사 축복 찬미 등의 행위가 다 포함돼 있는 것이다.
「변화」라는 말은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변화를 뜻한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던 나를 올바른 길로 가도록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의 순례의 목적은 하느님 나라이다. 오직 하느님 나라의 완성、즉 사랑의 완성 또는 구원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목적지를 향해 순례하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인 것이다.
순례자는 하나의 나그네이다. 그러나 순례자는 자기가 머무는 발자국마다 축복하며 보다 나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나그네이다.
자기가 머무는 그 땅을 축복하고 자기의 땀과 피를 그 축복의 제물로 바치는 것이 우리 성조 아브라함ㆍ야곱ㆍ모세가、우리 한국 순교자들이 보여준 신앙이다.
히브리서와 교회헌장 7장에 보면 현세생활을 「순례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순례의 길에서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바로 성찬인 것이다.
성찬은 바로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순례의 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내적변화를 가져오는 장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혼란 속에 우왕좌왕하는 현대인의 시간을 동트는 희망의 새벽으로 변화시킬 방법은 오직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와 만나는 길밖에 없다.
우리의 문명이 절망하리만큼 병든 까닭은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때 우리는 새로운 소망을 찾을 수 있고 동트는 새날의 아침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의심의 구름 속에서 헤어나오기 위해、고독과 실망에서 활기를 찾기 위해、불안과 공포에서 소생하기 위해、방황과 좌절에서 빛을 찾기 위해 꼭 필요한 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으로 바로 성찬 안에서 얻어지는 힘인 것이다.
슬픔과 고독에 잠겼던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주님、생명의 주님을 만나고 기쁨과 평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엠마오의 두 제자는 예수의 성찬전례에 참석하고는 로마의 창검이 번쩍이는 예루살렘으로、예수를 따르는 신앙인들을 잡아들이고 있는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조롱과 욕설과 저주하는 민중 속으로 예수부활의 기쁜소식을 알리고자 힘차게 달려갔다.
이 모든 것은 성찬에서 얻은 은혜로 되는 것이다.
성찬이란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성찬에 의해서 변화돼야 한다.
성사적인 양식과 예언적인 현존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미사 때 빵과 포도주의 변화를 이룰 때 우리는 변화를 예측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현존을 의식하게 된다.
어떤 사랑인가?
창조적인 사랑ㆍ수용적인 사랑ㆍ개방적인 사랑ㆍ구원적인 사랑과의 만남은 순례자를 기쁨으로 가득 채운다.
따라서 성찬은 축제라고 부를수 있다. 사랑이 흘러넘치는 기쁨의 축제가 미사성제인 것이다
성찬 안에서 예수를 만나고자 한다면 우리도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공동체가 되고 성서를 읽으며 함께 기도하고 밥을 나무고、콩 한쪽이라도 반씩 나누는 나눔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난다.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만나면 우울ㆍ실망ㆍ좌절 문제들이 다른 모습으로 변화된다.
성찬 때 우리는 바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게된다.
말씀의 식탁、성찬의 식탁 두가지 식탁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 식탁에서 온갖 우리의 모든 문제들이 내 자신이、성찬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변화의 과정이며 우리를 변화시키는 분은 바로 성찬식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유스띠노 성인은 서기 150년 『성찬 중에 변화는 다만 봉헌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봉헌물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의 변화는 바로 우리 자신의 변화인 것이다.
성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순례자는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작은 예수의 모습이 보여져야 한다.
기나긴 혼인잔치에서 물이 술로 변한 것처럼 케케묵은 때를 벗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되어져가는 성체」이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체질화 되어야 한다.
추기경의 말씀대로 「남에게 먹히는 밥」이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름대로의 소명과 커다란 과제가 우리 각자에게 남겨져 있다.
사막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로 양육되며 야훼 하느님과 함께 약속된 땅을 향해 나갔듯이 생명의 양식인 성찬에서 큰 힘을 얻어 변화된 우리들은 거센 비바람과 거친 파도 속에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한마음 한몸」이 되어 「하느님나라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 각자는 작은 예수의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고 순례의 길에서 「되어져 가는 성체」로서의 행동들이 사회ㆍ가정ㆍ교회 어디서든지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써 보여져야 할 것이다.
박복주
<수녀ㆍ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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