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의 일이다. 필자가 그 당시 마산시 월남동의 주임신부로 있을때의 일이다. 성세 찰고를 하는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하느님이 몇 분 계시냐고 그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그 할머니 대답이『세 분 아닌기요』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다시 그 세 분이 어디 계시냐고 질문하였다. 그 할머니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구 마산에 한 분 있고예. 완월동에 한 분 있고예. 그리고 여기 한 분 있지 아닌기요』라고 대답하는것이었다. (주=그 당시 마산시에는 3개 본당이 있었다)그 할머니에게는 사제가 바로 하느님으로 보였기에 그런 명답(?)을 했을 것이다. 물론 그 할머니는 찰고에 합격되어(?) 세례를 받으셨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제인 우리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사제의 역할이 예비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자각하였다. 그러나 사제만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말보다도 행동과 생활을 통하여 증거와 사랑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크리스찬 생활인 것이다. 현대인들은 말보다도 눈에 보이는 표지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고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느낄때 비로소 우리를 따를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교리교육은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말로 전달하는 것만으로 불충분하며 동시에 행동과 생활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사랑으로 요약된다. 그러기에 사랑의 생활을 현대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생활은 사제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크리스찬 개개인이 사랑의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 특히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기에 우리 모두가 사랑의 증거자가 되어 사랑이신 하느님을 보여주어야 할것이다. 마산의 그 할머니를 가끔 생각하면서 나의 생활을 반성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