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듯 가을도 깊어 뜰에는 석류알이 단단한 껍질을 뻐게고 핑크빛 수정알의 영롱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때가 차면 산과 들은 봄부터의 창조활동으로 알찬 열매가 되어 가을의 대자연을 주홍의 비단으로 수놓고 풍요를 안겨주며 다음해 새 봄 차비도 한다.
사람을 자기 모상대로 창조하시고 자연의 주인으로 높여주신 하느님을 창조주 하느님으로 받들기도 인색한 인간이지만 더욱이 자연의 주인으로 하느님 닮은「작은 창조주」의 사명완수에는 무관심 이상의 소홀함이 많다.
자연에의 도전, 자연의 정복 등 살벌하게 자연에 대치해온 인간이 결국 무엇을 이겼는가. 무수한 공해와 대기와 환경의 오염 뿐아니라 자연도전의 역군인 기계화 공업화가 인간의 가치마저 상실시켰고, 정복했다고 큰소리친 인간에게 자연은 거꾸로 그의 거대한 위력으로 인간을 무력케하고 파멸시키고 있지 않는가.
자연은 위력은 있어도 오염은 없는데 인간이 손닿는 곳에는 오염이 없는 곳이 없다. 자연의 주인이라는 인간이 실은 이미 그자리를 빼앗긴지 오랜지 모르겠다. 자연은 점잖케 인간에게 경고하고 때로 호되게 보복도 하는것은 사필귀정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분수를 지켜야 한다. 애초에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찾아 자연을 아끼는 주인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공업화를 서두르고 후진국에서의 탈피도 다 자연과 질서를 존중하는 원리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자연은 속이지 않는다. 자연은 차별대우가 없을뿐 아니라 자연은 하느님의 창조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자연을 아끼고 이용하는 자에게 무한의 힘과 지혜와 조화가 나오고 그를 천대하는 자에게는 오염과 보복이 따르게 된다.
자연에서 지혜를 얻으려면 먼저 인간의 마음에서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경외심(敬畏心)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하느님을 업신여기는 마음은 없어야 한다. 해마다 풍요한 가을을 주시는 분에게 감사와 내 자신의의 가을은 무엇이 그 추수인지 마음의 회심이라도 있어야겠다. 가을은 많은 명상의 자료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