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서울 명동 대 성당 앞 도로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1시가 되면 어김없이 허름한 차림의 한 청년이 기타를 들고 나타난다.
잠시 주위를 정돈한 후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에 길가는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춘다. 헐렁한 외투자락을 걸치고 노래 부르는 젊은이의 바로 옆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는 팻말과 모금함이 놓여 있다.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하고 진실한 사랑의 손길을…여기 모이는 수많은 사랑은 부산에서「심장병 환아 상담소」를 운영하시는 김옥희 수녀님께 전달되고 있습니다』
박준(26·토마스·명동 본당)씨. 그는 이제 명동을 찾는 사람들이나 명동사람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친근한 우리의 이웃이다. 『심장병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취지는 제가 노래 부르는 모습 그대로 입니다. 이 자리는 아이들을 위한 것 인만큼 사랑의 외침이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지기를 바랍니다』 『11월 26일로 명동에서 모금활동을 시작한지 꼭 1년이 됐다』는 박준 씨가 이런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세브란스병원에 있는 친구를 찾아갔다가 우연히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됐다. 『여덟 살 된 그 어린이는 웃지도 못했고 남들처럼 뛰놀지도 못했습니다. 그 어린이는 저에게 숨을 쉬지 않고도 언제나 맑게 웃고 있는 곰 인형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고려대 재학시 데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제적당했던 박준씨는 그 어린이의 청을 들어줄 수 없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냥 잊어버려도 될 일인데도 그 어린이의 말이 못내 잊혀 지지 않았습니다. 생각 다 못해 아는 사람들한테 스피커 등을 빌어 그 어린이에게 사다줄 곰 인형 기금 마련 노래를 시작 했습니다』
처음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나 무관심했고. 더구나 명동한복판에서 떠들었다고 해서 고성방가 죄로 파출소에 연행되기도 했다. 『다행히 도와주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고. 하느님의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자리를 명동 성당 앞으로 옮기게 됐다』고 밝힌 박준 씨는 며칠 동안 모금활동을 편 결과 곰 인형을 20개나 사서 그 어린이에게 갖다 줄 수 있었다.
단순한 동기에서 출발했지만 전국 각 단체에서 심장병에 대한 홍보활동을 펴고 있는 박준 씨는 지난 10월 15일에는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를 명동 사도회관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어느 때는 목이 퉁퉁 부어서 물 한 모금 마실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래 부를 시간만 되면 나도 모르는 힘이 생겼습니다.』고 말하는 박씨는 지난 7월 어느 독지가의 따스한 사연과 함께 거금이 들어있는 봉투를 건네받았을 때 너무 감사한 마음에『하느님 탱큐』라는 말을 외치기도 했다고 한다.
하루에 부르는 곡수는 대략 2백 여곡이지만 가까운 친구들과 명동청년회 회원들의 도움에 별로 힘든 줄 모르고 있다고 밝게 웃는 박준 씨는 추위에 대비, 수녀들이 짜준 반장갑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었다. 『앞으로 별다른 장애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 이 자리를 대신할 때까지 노래를 계속 부르겠다』는 박 씨는 『해마다 연말 때면 연례행사처럼 유행되고 있는 가식적인 모금운동이 하루빨리 근절되기를 바란다』고 모금운동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기도 했다.
평상시에는 교회에서 성가대와 합창단의 노래지도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박씨는 3남3녀 중 장남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