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티의 수난기였던 6ㆍ25동란때의 일이다. 나는 60여 명의 고아를 인솔하고 나의 고향 부여 금사리에 피난을 했다. 괴뢰군 남침으로 적치하가 된 7월 어느날 그곳 금사리본당 신부 모요셉 불란서 신부를 찾아온 사람은 괴뢰군 3명이었다.
총을 들이대고 주인의 승락도 없이 신부사택을 침입 음식물을 내놓고 먹는가 하면 쓸모있는 물건만 눈에 띄이면 닥치는대로 자기들 주머니에 넣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우리 인민의 것이다』라고 뇌까리면서.
그 중 한명이 신부님 팔목시계를 슬쩍하였던 것이다. 조금후에 신부님은 상자속의 시계가 없으니『당신들의 짓이니 공산당은 도적놈이다』하고 노발대발했으나 그들은 억지로 자기들의 도둑누명을 벗기위하여 그 광경을 목격했던 부락민을 집합시켜 놓고『너희들 짓이니 시계를 내놓지 않으면 총살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그때『선량한 주민들에게 도적의 누명을 씌우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호령을 하니 괴뢰군은 사라져 버렸다.
이튿날 괴뢰 정치 보위부원이 와서 신부님을 납치해갔다.
신부님께 갖은 고문을 거듭하던 중 금사리본당 주보 방지거 사베리오 석고상을 신부님 앞에 떼다놓고 도끼로 찍어가며 예수를 박살낸다고 조롱을 하며『권총을 내놓아라. 어디다 숨겨두었느냐』하고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고 하니 그 괴로움 어지 필설로 다하겠는가?
9ㆍ28 수복후 목격자의 말을 들으니 신부님께서는 대전에서 쇠사슬에 묶여서 치명을 당하셨으며 그 후 수단을 보고 많은 시체속에서 찾아 대전성직자 묘소에 안장하였다. 나중에 신부님께서 부여 정치보위부에 수감당시 쓰신 유서가 발견되었는데『부여규암에 요셉을 주보로 한 성당을 지어달라』는 사연이었다.
신부님께서는 일찍이「빠리」외방전교회 신학교를 졸업하시고 이 땅의 주령사업을 위해 수륙수만리 정든 고국, 부모형제를 작별하시고 한국에 오셔서 검은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우리영혼 위해 평생을 바치셨으며 특히 서정리성당은 당신의 고향에 있는 단 하나의 포도밭을 팔아서 지었다고 한다.
또한 의를 위해 굽힐줄 모르며 죽는순간까지도 성당건립을 생각하신 거룩한 정신 기리 빛날것이며 치명자의 유지는 헛되지 않아 규암에는 오늘날 훌륭한 성당이 건축되었으니 모신부님을 추모하게 되며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시길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