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가 돼서 고백성사를 제일 많이 준 적은 6ㆍ25동란이 터진 직후였다. 약 1주일간을 식사시간만 빼놓고서는 내내 명동사제관 복도에 임시로 설치한 고해틀에 앉아 있어야 했다. 혼배조당에 걸려있던 신자들도 여럿이 찾아와서 가능한대로 조당을 풀도록 했고 오래된 냉담자들이 회개하고 고백성사를 받았다. 영세예비중이었던 한국군 장교에게는 괴뢰군이 들어온 후에 내 방에서 급히 대세를 줘서 내보냈다. 언제 무슨 급박한 일이 닥칠지 모르니까 모두 죽을 준비들을 해두려는 것이었다.
부산 피난 당시에는 포로수용소에서 매일 중환자들에게 대세를 5~6명씩 줄수 있었다. 동란동안과 동란 직후 사람들이 극도의 위험과 궁핍속에살고 있을때는 그야말로 전교의 황금시대였다.
요새는 냉담자가 많이 생기니까. 『전쟁이 또 나야 정신들을 차리지』하고 탄식하는 사람도 없지않다. 생활이 안정되고 윤택해지거나 생활향상의 의욕이 강해지면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게되는 것이 실제 현상인 것 같다. 현세생활의 안정과 향상은 전인적(全人的) 구원을 위하는 복음의 요청이라고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생활향상의 의욕이 종교적 관심을 약화시키고 있다면 큰문제이다.
성경에는『가난한 사람들이 기쁜소식을 받는다』고 하였다. 현세적으로 안정되고 또는 윤택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마음으로 가난한 자」가 되지 않고서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거나 또는 풍족하게 되려고 골몰할때일수록 우리는 영신적 위기를 깨달을 줄 아는『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전보다 더 큰 새 창고를 짓고 그안에 풍부한 수확을 쌓아둠으로써 안심하려는 사람은『미련한 자야 바로 오늘밤 네 영혼이 네게서 떠나가리라』하시는 주님의 경고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영혼들의 안보를 위해서는 지나친 배려란 있을 수 없는 것이기에 목자로서의 안일을 스스로 두려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