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년이 지난 어느 월요일 이른 새벽이었다 주일미사 4대와 몇가지 회합으로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온종일 더위와 피로로 거친몸이 단잠속에 깊이 빠져있을 때다. 따르릉 몇번이나 전화벨이 울렸는지 요란한 벨소리에 벌떡 일어나 불길한 예감과 함께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는 바로 내 아랫동생으로부터 걸려왔으며 아버지께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중태시라는 내용이었다. 놀라움과 불안을 안고 서둘러 60여리 고향집에 다달아보니 꼭 무슨 초상집같은 무거운 분위기였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있는 일이지만 아버지는 노인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악성 고혈압으로 완전히 의식을 잃고 호흡마저 아주 불안한 상태였다. 형님을 위시하여 원근 친척들이 모여와서 저마다 걱정과 위로의 말이 오고갔다. 형님과 동생들의 정성어린 간호와 현대의술의 덕택으로 아버지께선 10여일 후엔 산소호흡을 뗄수 있었고 20일후 쯤에선 의식불명에서 깨어나셨다. 그리고 4개월후엔 건강이 거의 정상에 가깝게 회복되시어 집안에서는 간단한 산책이 가능하게끔 되셨다.
그동안 형님과 동생들은 거의 뜬 눈으로 시병(侍病)에 온갖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다른 형제들의 그다지도 애절한 소망과 지극한 효성에 비추어 나는 신부아들로서 내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나로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고작해서『주님의 뜻대로 되어지이다』라고 기도할 뿐이었다. 만일 운명하신다면 나는 연미사를 드리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 속에 내가 드릴 수 있는 효성은 너무나도 무성의하고 소극적인 것 같아 무척 마음이 아팠다. 천주께 몸을 바친 사제로서 본당 사목에 지장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하여는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내심 자기합리화를 시키면서도 감히 이런생각이 스쳐갔다.
『다른 사제들도 이러한 경우 나처럼 별 수 없겠지 뭐 …』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사도 베드로는주님을 모셔다 장모의 열병까지 치료하지 않았던가. 아니면 마르따와 마리아 자매의 주님께 대한 사랑에 비유하여 자기는 마리아의 사랑이라고 자부하지는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