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골본당에서의 일이다. 본당에서 30리나 떨어진 전기도 없는 두메산골에서 밤 9시경 병자성사를 청하기에 급히 달려갔다.
도착해보니 60넘은 할머니가 목병으로 말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채 심한고통에 시달려 가슴도 배도 다 내놓은채 누워있었다.
그 옆에 쭈그리고 앉은 30이 넘어보이는 아들은 병자성사를 받으면 곧 죽게되는줄만 알고 내가 그 집에 들어설때부터 떨고만 있었다. 책을 받치기위해 촛불하나 켜는데도 성냥개비 3개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성유를 바르는 동안 옆에있던 두 여교우가 성모의 호칭기도를 바치는데 촛불을 켜든 아들도 응답을 하기는 하는데 분명히 우리말은 아니고 그렇다고 월남이나 캄보디아말도 아닌「우라부사」로 응답했다.
나중에야 내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니「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를 울먹거리며 떨며 당황한 나머지 10자를 간단하게 4자로 줄여 발음하다 보니「우라부사」가 된 것이리라.
이 대목은 우리 한글학 연구소에 보내어 연구과제로 제출함즉도 하다. 내 말의 정점은 이제부터이다. 이런 상황에서 촛불마저 제대로 똑바로 쥘리가 만무하다. 다 끝난 다음 책을 따라 촛불을 비추다보니 환자의 가슴과 배에 온통 촛불이 떨어져 하얗게 덮여져 있는것이 아닌가! 환자는 지쳐있는데다「우라부사」바람에 뜨거운 촛물로 어머니의 죽음을 재촉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병자의 성사는 병자의 영혼 육신의 건강을 기도로써 위로하고 옛일터로 도로 돌려달라고 애원하고 위로하는 성사이지 결코 빨리 죽으라고하는 성사가 아닌만큼 다시는「우라부사」와 같은 일이 재연되지 않도록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