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마다하고 20여 년간 부모없는 아이들을 위해 자애로운「엄마의 사랑」을 베풀며 가정을 꾸려온 최해련(마르따ㆍ54세)어머니.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다른 두 명의 은퇴어머니들과 함께 대구 SOS 어머니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최해련 어머니가 24년 동안 자신을 송두리째 바쳐 봉사해온 터전은 대구직할시 동구 검사동 962번지에 위치한 대구SOS어린이마을이다.
오스트리아인인 헤르만 그마이너씨가 창설, 1963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대구에 설립된 SOS어린이마을은 다른 고아원들과는 달리7~9명의 자녀들과 독신인 어머니가 가정을 이루어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랑의 보금자리이다.
4대째 내려오는 구교집안에서 철저하고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고 성장한 최씨는 평생 동정녀로 살 것을 원하였고 이런 최씨의 의향을 알고 계시던 주위신부님들의 권유로 1965년 이곳 대구 SOS 어린이마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예비 어머니격인 이모생활도 거치지 않은 채 바로1호집 어머니를 맡게 된 최씨의 마음은 무거웠다.
아이를 낳아 길러본 경험도, 살림살이를 해본 경험도 없는 최씨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처럼 1년 동안은 이 마을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최씨는 능력의 한계와 갈등을 느낄 때면 하느님께 의지하고 타고난 여성특유의 모성애로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20명의 자녀를 키우고10명의 손자 손녀를 둔 최씨는『맏딸인 아가다가 아기를 분만하다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아주 뼈아픈 고통을 체험했다』고 회상했다.
「고아」라는 말뜻조차 모르던 아이들이 남들에게「고아」라는 소리를 들을때면 가슴이 미어진다는 최씨는『우리 가정은 아니지만 엄연히 사랑으로 맺어진 가정이며 가족』이라고 강조한다.
또 최씨는 잊어버릴 수 없는 한 사건을 떠올린다. 『생후20일부터 키워온 아들이 국민학교를 다닐 때 였어요. 하루는 우리 아이가 울면서 오길래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었어요. 담임선생님께서 엄마가 종교를 가진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시길래 우리아이가 손을 들었더니 선생님께서『너는SOS어린이 마을 아이니까 손 내려』라고 하시더래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얼마나 눈앞이 캄캄해지던지…』라며 최씨는 말을 잊지 못한다.
힘들고 어려운 적도 많았지만 최씨에겐 기쁜 일도 흐뭇한 추억들도 많았다. 매년 명절이나 성탄ㆍ부활ㆍ영명축일 때면 잊지 않고 자녀들이 찾아와 북적거리고 손자 손녀들이 재롱을 피울 때면 최씨는 더없이 기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특별히 잘 살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서로 소중히 여기고 도와주며 살았을 뿐이예요』라며 자신이 살아온 모습들은 모든 가정의 어머니들이 다함께 겪는 것이 아니냐며 결코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삶을 애써 평범한 한 가정의어머니가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온 삶일 뿐이라고 겸손해 하는 최해련 어머니.
최해련 어머니는 은퇴한 몸이지만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 대학생인 딸아이, 멀리 오스트리아에 유학간 딸이 좀 더 성장하여 훌륭한 사회의 일꾼으로 자리를 굳히고, 결혼하여 완전히 자립한 후에라야 완전히 은퇴하게될 것 같다.
<趙賢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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