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재임시의 일이다. 하루는 병자의 성사를 청한다고 사람이 왔기에 따라나섰다. 도착한 곳은 조그마한 판자집이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기막히게 딱한 사정이 벌어져 있었다.
늙은 홀어머니가 단 하나밖에 없는 젊은 아들이 할딱할딱 숨을 넘기고 있는 장면을 지키고 있었다. 병자의 성사를 끝내고 사연을 들어본즉 뒤늦게 유복자를 하나얻어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애지중지 길러가며 온갖 기대와 희망을 걸고 공부를 시켜 대학까지 마쳤다는 것이다.
이제 막 취직을 해서 어머니를 편하게해 줄줄 알았더니 먼저 간다고 말끝을 흐려버린다. 마지막으로 한마디『주님께서 주셨다가 데려가시니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수밖에』하면서 깊이 한숨짓는다.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말문이 떨어지지 않아 기도드리겠노라고만 하고 물러나왔다.
돌아오면서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어째서 이러한 어머니의 고통이 있는가를. 어느덧 내 생각은 십자가밑에 서 계시는 성모님께로 달려가고 있었다. 성모님은 확실히 당신 아드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밑에 서 계신다. 예수께서도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던 당신의 어머니께서 십자가상 제사에 불참함을 원치 않으셨다.
『나의 한방울 피라도 능히 온 세상을 모든 죄악에서 구할 수 있었다』면서 예수님은 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성혈의 마지막 방울까지 흘리셔야 했던가? 성모님은 왜 마음을 사뭇 뚫는 이 지독한 시간을 살으셔야 했던가? 우리는 다시 한번 하느님의 흘러넘치는 사랑과 그 심오한 계획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의 사랑은 강하기 때문에 당신이 사랑하시는 이에게는 자신을 완전히 바칠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내가 만난 그 할머니는 아들의 죽음으로 자신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바칠 수 있게 되었고, 성모님은 그 어느때보다도 십자가 밑에서 가장 완전히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쳤던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좌우에 앉는것이 아니라 그와 같이 쓴잔을 마시는데 있다. 나의 사제생활을 회고하면서 안일과 체면만을 찾았던 것과 고통과 어려움이 닥칠때마다 짜증과 걱정과 우울속에서 지낸 나날들을 후회하며 앞으로는 모든 괴로움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참겠다고 결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