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본당 신부인 나에게는 하루종일을 지내도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없다. 그렇지만 장이 서는 날이면 으례히 찾아오는 서너명의 방문객이 있다. 장돌뱅이 거지들이다.
한쪽 팔이 없거나 한쪽 다리가 없는 목발 병신거지 손가락이 오그라지고 얼굴이 일그러져 보기 흉하게 생긴 문둥이거지 사지가 멀쩡한 미남형 청년거지 등 가지각색이다.
외모도 그렇지만 그들의 요구도 다양하다. 『요기할 밥을 조금 달라. 국수 한그릇 사먹을 돈을 달라 바지가 헤어졌으니 옷을 달라. 곡식을 달라. 신이 닳았으니 신을 달라. 여비를 달라 등등, 주문이 다르더라도 대개는 돈을 주면 된다. 그들이 동정해 달라고 간청도 하고 때로는 협박도 하면서 요구하는 금품 이래야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들의 동정을 구하는 일에 아주 인색해서 못난이 짓을 여러번 하고서도 마음 편하게 가책을 받기는 커녕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한 때가 있었다. 돈 몇 푼 안주려고 목에 핏대를 세워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가며 거지들과 다투기도 했고 나의 신분을 감추기도 했다.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돈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사실 그 거지들을 동정했다 해서 내 생존에 치명적 위협을 느끼게 되거나 굶어죽거나 내 지위나 명예가 손상되거나 내가 해야할 일을 절대로 못하게 되는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거지에게 몇 푼 돈을 안주면서까지도 아낀(?) 돈을 잘 사용한 경우도 있겠지만 잘못 사용하거나 낭비한 경우도 때론 있다. 신부랍시고 신분에 맞는 생활을 한다는 자기정당화의 구실 아래 외면치례나 허세를 부리는데 필요이상의 돈을 쓰기도 했을 것이고 자신이나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에 돈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이야기의 결론은 사랑을 가르치고 사랑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위치에 있는 자신이 큰일 뿐이 아니고 아주 작은 일에 있어서도 자신의 가르침이나 보여야할 모범에 역행했다는 사실과 마음 착한 사람들이 익숙해 있는 사소한 선행을 안하고 있다는 자책감을 가지는 동시에 물질사용에 대한 가치관과 책임감을 숙고해 보아야 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