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978년은 이른바 유신시대의 말기였다. 이 해 4월 서울의 가톨릭출판사에서 조그만 번역 책자 한권이 출판되었다. 제목은『흑야(黑夜)』, 저자는 엘리 위젤이었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향이 있어 그 뒤로 가톨릭출판사는 위젤의 또 다른 책『벽 너머 마을』과『새벽』을 더 출판했다. 일반 사회 출판사에서도 위젤의 저서를 약간 출판했다.
이 위젤이 1986년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좀 의외였다. 종전에 노벨 평화상은 대체로 세계적인 명망을 지닌 사람에게 주어졌다. 엘리 위젤은 아직 그럴 만한 명망가는 아니었다. 그가 지니는 인상은 한 고독한 유태인 문필가였다. 그가 소재로 삼는 나치스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야기도 이제는 알려질 만큼 알려졌고, 그 끔찍한 대량 학살의 만행에 대해서는 더 듣고 싶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 관념일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이 문제가 다시 세계의 많은 사람들 앞에 새삼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실상 위젤의「흑야(黑夜)」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판되었을 때 그때 나름으로 의미가 있었다. 답답한 사회 어두운 사회가 왜 이렇게 계속될까? 부도덕한 권력자들은 쉬 망하지 않고 착하고 힘없는 많은 사람들은 왜 억울하게 당하기만 해야 하나? 정말 하느님은 정의로우신가, 그 하느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가? 이러한 불의의 시대에는 양심의 십자가를 지는 순교자들도 나올만한데, 인간들은 윈래 약하므로 순교도 은총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한다.「흑야(黑夜)」의 번역자는 머리말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특히 그는 (주인공 엘리에제르)교수 형을 당한 어린 소년이 단말마의 고통을 서서히 당하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하느님도 그 소년과 함께 죽어가고 있다는 신앙적 절망을 느꼈다. 이에 대해 김 추기경은『이런 절망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있었던 일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는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절규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설명한바 있다.>
저명한 가톨릭 작가인 프랑소와 모리악이 위젤의『흑야(黑夜)』에 덧붙인 서문이 있다. 위젤의 문필작업에 격려를 준 이는 모리악 이었다. 처음에 위젤은 한 젊은 기자의 신분으로 모리악을 방문했었다. 그 때 엘리 위젤은 자신이 동유럽 트란실바니아 태생의 16세 유태인 소년으로 나치스독일의 아우슈비츠와 북헨발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체험을 이야기했고, 모리악은 그를 끌어안고 울었다. 모리악은 서문에서『신(神)은 죽었다』고 부르짖은 니체의 관념이 위젤에게는 현실적인 체험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모리악은 말했다. <하느님은 어디 있는가? 그때 나의 내부에서 대답하는 음성이 있었다.『어디 있느냐고? 그분은 여기에 있어. 여기 교수대 위에 목이 달려 있어』>
<교수대 위의 하느님>은 위젤이『흑야(黑夜)』안에서 토로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 말은 무력한 하느님을 원망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온 그리스도를 악의 무리가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죄의 작용은 1945년의 아우슈비츠와 1978년의 서울에서 끝난 것이 아니고 오늘의 우리사회에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원망하고, 하느님을 부정하고, 정의(正義)를 포기할 수 있을까? 위젤의「벽 너머마을」은 이 문제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최후의 한 방울의 눈물, 한 방울의 피, 한 조각의 빵이『하느님은 시험하기 위해 우리를 창조했느냐』고 반항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문의 한계에 갇히는 것은 가장 안이하게 인간성을 거스르는 일이다. 젖이 말라올 때뿐이다. 젖이 말라버린 어머니를 떠나 높이가 높으면 떨어지는 깊이도 그만큼 깊다. 알맞은 높이에서 존재와의 단순하고도 정직한 대화를 갖고 존재의 눈짓을 발견해야 한다. 영혼이 가는 길은 잡초가 무성한 밤이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찬란한 업적은 그러한 밤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젤은 이렇게 고통을 통한 존재 긍정과 죽음을 통한 부활에의 신뢰를 묵상 속의 기도처럼 술회해 나간다. 엘리 위젤은 독일의 패전으로 북헨발트 수용소에서 해방되었을 때 지금은 루마니아 땅이 되어있는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부모와 누이들을 수용소에서 다 잃은 그는 홀로 프랑스로 갔고 다시 미국으로 갔다. 한에 사무친 그의 외로운 저술은 이미 25편의 책을 냈다고 한다.
위젤의 이번 평화상수상은 히틀러의 최후에서 보듯 악의 무리가 결국 참패하는 역사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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