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본당 주임신부로 있을때였다. 개신교에서 개종한 열심한 여교사가 있었다. 매월 월급날이면 봉투에 빳빳한 새지페로 2천원씩 넣어 교무금을 바치곤 하였다. 그의 월급이 2만원이었으므로 십일조를 바치는 셈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찾아오더니 느닷없이 하는 말이『저도 명실공히 가톨릭 신자가 되고싶어요』하는것이었다. 깜짝 놀라서『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십일조를 바치다보니, 아직도 개신교에 남아있는 기분이어서 저도 다른 교우들처럼 1년에 2천원 정도만 교무금으로 바쳐야 명실공히 가톨릭 신자가 될것 같아요』하는 것이었다.
할말이 없었다. 정말 가톨릭 신자들은 그정도의 교무금밖에 바치지 않는다. 그 후에도 그 여교사는 십일조를 충실히 바쳐 주었지만『명실공히 가톨릭 신자가 되고 싶어요』한 그의 말은 자주 강론때 사용했다. 개신교 신자들은 사오십명만 되어도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당을 짓고 하지만 가톨릭 신자들은 천명이 넘어도 성당을 짓기 어려울 뿐아니라 신부님 한 분을 모시기도 어렵다. 흔히는 전교신부님들의 탓이라고 간단히 설명해 버린다. 그러나 전교신부님들이 외원을 끌어들여서 신자들에게 자립정신이 없다는 이유만이 아닌것 같다. 근본적으로 정신자세에 무슨 결함이 있을듯하다.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전 수축을 위해 모금운동을 국제적으로 벌이면서 대사를 윤허하였다가 마르틴 루터에게 호되게 공박을 당했던 것인데 서로 갈라진 다음에는 가톨릭의 모금은 저조하고 개신교의 모금은 성공하고 있다는 역설적 결과를 나타냈으니, 여기에 무슨곡절이 있어 보인다.
가톨릭 신자들은 대사나 은혜를 받는다는 자기 이득을 전제로 물질을 교회에 바치는 습성이 깊어졌고 개신교 신자들은 오히려 반대로 십일조는 하느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하는데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 5천원의 미사예물을 바치는 교우가 1년 교무금은 3천원도 바치기 어려워한다. 교육을 통해서 이런 정신자세가 바뀌어져야 가톨릭도 외원없이 자립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