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961년 신품을 받고 미아리본당 보좌로 부임한지 3개월째 되던때의 일이다. 회장급으로 구성된 쁘레시디움이 옥외행사를 간다기에 해방감에서 사복차림을 하고 회장들과 같이 도봉산으로 향했다. 산입구에 있는 교회묘지를 지날무렵 60세 가량 된 노인이 다가오면서 혹시 신부님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곳은 의정부본당 관할이고 나는 사복차림이기에『아니요』하고 지나려 하자 재차 묻는다. 그때 나는 가책이 되고 당황하면서『예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 노인이 종부를 청하기에 몇몇 회장과 같이 따라가보니 할머니 한 분이 주마담이란 병과 시름 끝에 생명이 위독하지 않는가! 종부를 주려하니 성유와 예절책이 있을리 만무다. 그래서 고백성사만 집행하고 그 집을 나오면서 곰곰히 생각했다.
『어떻게 내가 신부라는 것을 알았을까』하고 궁금하여 물어보니 노인은 침묵을 지키다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형편이 구차해서 신부님을 청하기에 죄송하여 9일기도를 시작했는데 3일째 되던 날 내일 신부가 이곳을 지나간다는 암시와 더불어 어떤 얼굴모습이 나타나더라』고.
나는 지나온 성직생활의 죄책감과 실수를 마음 아파 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 집을 들르니 병자는 선종하였다. 측은한 생각이 들어 수중에 있던 돈을 내놓으면서 연미사를 약속하고 돌아오는길에 회장님들은 이상한 일도 있다면서 기쁨과 신비스러움에 싸여있었지만 나는 큰 걱정이었다.
성당에 돌아와서 본당 신부님께 자세한 말씀을 드렸더니 칭찬은 커녕 꾸짖으면서 신부는 무슨일이 있을지 모르니 꼭 성유와 예절책은 지니고 다녀야 한다고 훈계하셨다. 당황한 회장들은 꾸중들은 나를 위로하려 했지만 내 심정은 착잡하였다.
그 이튿날 연미사를 지내고 아침식사를 할 때 본당 신부님은 인자한 모습으로 이번 일은 좋은경험이라면서 나를 격려해 주기에 나는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음에 다시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