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신학과정을 끝내고 독일의 시골 어느공장에 말단 노무자로 취직하여 약2개월 동안 일한적이 있었다. 봉급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좋은점에 눈독을 들이고 갔으나 일은 보통 고된 것이 아니었다. 3주일에 한번 있는 휴가에 유일한 희망을 걸고 교대로 야근까지 해가면서 하루가 여삼추라는 기분으로 매일매일을 보냈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온 전신이 축늘어져 옷도 입은채로 침대위로 몸을 던진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반성해본다. 불과 몇 일 사이에 나로서는 노동자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순식간에 나의 가슴은 반자본주의적 감정으로 가득찼다. 노동자들이 울분을 금치못하고 자본가를 공격하고 투쟁을 벌려나가는 것이 얼마나 수긍이 가는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ARBEITENㆍARBEITEN(일하시오 일하시오)하며 외치고 다니는 독일인 감독의 얼굴이 실로 나의 증오를 불러일으켰다. 나의 노동의 고충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에 비례하여 나의 증오심도 날개를 펴고 커져갔다. 심지어는 이렇게까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저 사람이 20년만 빨리 태어났었더라도 훌륭한 SS(히틀러의 친위대)의 대장직을 완수하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이러한 나의 좁은 소견이 부끄럽기 짝이없다. 불과 2개월밖에 근무하지 않은 나로서는 불평을 늘어놀 자격이 없겠지만 몇년씩 일하고 있는 노무자들을 보며 정말로 불쌍하다. 유럽에서 가장 수준높은 독일에서도 하층노무자들의 실정은 다른나라와 별차없다. 봉급은 많아도 그만큼 지독히 일해야하고 그 피로를 풀기위해 많이 소비해야 한다. 내가 있던 공장은 특히 고된 일을 하는곳으로 노무자의 대부분이 그리스나 터키에서 노동이민 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본국에 두고온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현재를 희생시킨다. 그들이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도 아무도 반겨 맞아줄 사람이 없다.
그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따뜻한 밥상을 준비해줄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제각기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의 고통을 몇년씩 참고 견딘다. 이러한 그들에게 나는 진정으로 머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