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근대적인 대철학자 베르그송의 저서「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 폐쇄적인 윤리도덕종교와 개방적인 윤리도덕종교에 관한 것이 있는데 나는 요즘 새삼스레 이 상반되는 두 개념을 현실적으로 체험하고 새로운 느낌이 일어났다.
내가 현재 맡고있는 본당 구역내에 모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암(癌)을 앓던 환자였었다. 이미 타계하고 없지만 그가 생존시의 일이다. 가족들은 그에게 암이라는 사실을 알리지않고 쉬쉬하면서 운명하는 날까지라도 마음 편히 살도록 하기에만 갖은 정성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암(위암)을 가진 환자가 몸이 편치 않은데 어찌 마음이 편하리오만 그는 달랐다. 자기의 병명(病名)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아무리 가족들이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표정에서나 집안에 흐르고 있는 분위기를 보고 이미 알았었나 보다. 아니, 그러한 병자들은 대개 자신의 병에 대해서 스스로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여느 평범한 환자를 찾아보듯이 그를 방문했을 때였다. 그는 나를 반가이 맞으며 환자답지 않게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나 하면, 퍽도 나의 방문을 황송해 하기도 했다.
나는 그를 위한 기도를 드렸고 여러가지로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조리 잘 하시라며 작별을 고하자 그는『신부님, 한번 더 오셔서 수고해주셔야 되겠습니다』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코 허리가 찡해지는걸 느꼈었다. 그런데 같은 구역내에 역시 열심한 할머니 한 분이 딸네 집에 얹혀 살고 있는데 그녀는 나를 찾아와 한다는 말이『신부님예, 난 우야꼬예?』하며 늘 울상이었다. 딸네 집에서 당장 내쫓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이 두가지 예가 곧 베르그송의 개방과 폐쇄에 관계되지 않을까 싶지만, 나의 25년의 사제생활이 어디에 해당될는지 나는 아직 모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어떻게 살는지를 알수 없는 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