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신부가 되어서였다. 발령을 받고 임지가 보이는 긴 다리위를 지날 때 강변 다리밑에 비닐로 덮인 밭돌을 보면서 며칠 전만해도 학생이었는데 이제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한다니 하는 생각을 했다. 송아지는 자라다 어느새 소가 되지만 하루 아침에 학생에서 신부가 되었으니 점점 가까와질수록 풍선처럼 부풀었던 자신감이 맥없이 빠지고 생각치도 않은 말이 튀어 나왔다. 『신학교 생활 15년인데』
성탄 판공성사로 한창 바쁜 때였다. 할머니에 이어서 한 여학생이들어오자
『신부님 저는 미사고 고백성사고 도대체 형식적인 것만 같아서 볼 마음이 없는데요』한다.
재빨리 15년을 훑어봐도 이런 경우 간단한 대답은 막연했다.
『그러면 어떻게 들어오셨습니까?』
『어머니가 자꾸 가라고 하셨어요』『그러면 어머니 말씀대로 고백소에 들어왔으니 이제 나가시면되겠군요』『……』내말이 너무 지나쳤다 싶어 고백성사 받기전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점은 후에 다른시간을 이용하자고 권했다. 『신부님, 크리스마스날 미사참례는 꼭 해야만 되나요? 그날은 꼭 빠져야 되는데 어떡하죠?』『어떤 일 때문인데요?』
『친구들과「올나잇」하기로 돼있거든요』
신학교 생활 15년이 바닥부터 흔들려옴을 느꼈다. 교도소 사목을 맡고 처음 사형집행때의 일이었다 사람 둘을 죽인 20대의 청년으로 그간 착실히 살다 방지거란 세례명으로 성세를 받고 동료 죄수들중에 모범수로 이름이 난 친구였다. 나는 소위 생사의 갈림길이라는 그 길목에서 기다렸다. 잠시후 창백해질대로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애써 웃음으로 내 손을 꼭잡으면서 내 마음을 아는듯이『신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요. 잘 준비되어 있습니다』고 작은소리로 말했다.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고백성사와 견진성사와 성체를 영해주고 그의 죽음을 지켜 보아야만 한다. 「덜컥」소리와 함께 거센 운명을 하는 그를 바라보며 이 한구석에 나의 15년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