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말엽의 단말마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의 일이다. 안동 본당신부로 있을때 이웃 예천에 갔다가 역두에서 두 형사가 본서까지 가잔다. 대뜸 간첩 혐의로 수감되어 며칠동안 심문받다가 하루는 불러내 BㆍMㆍV가 무슨 뜻이냐고 묻기에 자신있게 그건 Beata Maria Virgo의 두서만 딴 약자라고 말했더니 그것말고 딴 의미도 있다고 한다.
딴 뜻은 절대로 없다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다시 들어가 있으라기에 그것으로 끝날줄 알고 안심했지만 웬걸-
그날 한 밤에 잠든 나를 깨워 나오란다. 따라갔더니 각종형틀이 구비된 고문실로 안내한다. 거기는 두 형사가 기다리고 있다가 낮에 말한 BㆍMㆍV의 다른 뜻을 대란다. 그건 확실히 스파이 암호이니 바른대로 안대면 모든 고문을 하겠단다. 어처구니가 없다.
낮에 말한대로 그뿐이지 딴 뜻은 절대로 없다고 말할때 한 형사가 쇠뭉치로 내 등을 마구 후려치며 바른대로 안대면 죽인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 무지한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시킨단 말인가. 그러나 3ㆍ4차 맞고나니 가슴에서 뭉클하고 분이 치민다. 두 눈을 부릅뜨고『이놈들! 나를 누구로 알고 이따위 짓이냐? 내 인격이 너희들에게 매맞는 것을 허락치 않는다』고 벽력같은 소리를 질렀다.
죄진 놈이 무슨 인격이 있느냐며 한번 더 치고는 저희끼리 눈짓하다가 딱 그친다. 다시 감방에 돌아와 생각하니 억울하기 짝이없다. 그 후에 대구 구치소까지 거쳐 구속된지 3개월만에 불기소 처분으로 그 무시무시한 죄목에서 풀려났다. 그 후 나는 가끔 자랑삼아 그때 형사들도 내 위엄에 눌려 매를 놓더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하니 그것은 알량한 내 위엄 때문이 아니라 모두 다 위대하신 BㆍMㆍV의 은덕인 것을 …
성직생활 40년에 허구많은 사연들 중 그때의 일이 항상 내 뇌리에서 반추된다. 그 후에 안 일이지만 어떤 신부가 그때 불란서 주교님께 라띤어편지를 쓰면서「Saudetur BㆍMㆍV」라고 쓴 것을 보고 이왕 간첩혐의로 잡힌 놈이 있으니 이놈을 족치면 간첩암호를 알아낼 수 있다고 믿고 덤볐다니 내-원-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