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다. 양떼를 친다. 짐승을 기르는 사람이「닭 친다」「돼지 친다」「새끼 친다」고 하지만 양떼를 치는 목자로서 사람들을 친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 백성을 양에 비교하여 양떼를 친다고 하지만 사람들을 친다(두들긴다ㆍ때린다) 하지않고 하느님 백성을 다스린다고 한다.
다스릴 치(治)는 치긴 치는것이다. 아이들도 어려서 종아리를 맞아야 옳게 크는것과 같이 현대의 복잡한 생활속에서 고달프게 살아가는 평신도들을 목자가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쳐야한다. 아이에게 종아리를 때리듯이 때로는 책망도 해야하고 때로는 등을 쳐서 격려도 해야한다.
사람들은 음식을 맛있게 하기위해 조미료를 넣을때 쳐 먹는다고 한다. 목자는 양들을 잘 치기위해 조미료를 적당히 쳐 주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다양한 성격에 자유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는 요모조모를 세심한 배려를 해야하며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치는 자나 침을 받는 자나 항상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요전에 국회에서까지 의원들이 서로 치고받는 소동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왜 그럴까? 내 입장만을 생각하고 고수하려 하기 때문에 극한 상황을 이룬다. 겁이 난다. 자기가 더 많이 배부르겠다고 또 자기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생각하고 백성의 입장을 무시 할 때 발생하는 무서운 정치(치는) 싸움이다.
자기희생과 이타주의가 메마를수록 부당하게 치고 받는다. 사랑이 없다는 증거이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희생없는 사랑은 거짓사랑이다. 사랑하는 마음에서 치고받음은 생산적이요 창조적이나 미움에서 치고받음은 파괴적이다.
초대 우리교회를 보라. 최고목자이신 그리스도와 같이 목자는 양떼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렸고 양떼들은 목자를 따라서 목숨을 바쳤다. 이렇게 우리교회는 눈물겹도록 피나는 노력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빛나는 유산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교회라는 우리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목자들은 양떼들을 하느님의 말씀과 천상음식인 성체로써 양떼들들 살찌워야할 책임이 막중하며 양떼들은 영양이 풍부한 젖을 스스로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